작성일 : 20-04-26 03:34
그래도 생은 계속된다.(펴온글)
 글쓴이 : 홈페이지관리자
조회 : 173  
그래도 생은 계속된다

이 풍진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한 고비가 지나면 다른 고비가 온다. 지금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고비 고비 전전긍긍하다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산 것 같다. 생에 속은 것이다. 나는, 우리는. 생은 우리를 속일 마음이 없었을 텐데도.

이젠 속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생에 속지 않을 만큼 내공이 생겼다고 자부해 보지만 어디 생이 그리 만만하던가. 다짐하고 나니 정말 대단한 바람, 엄청난 고비가 한반도를, 세계를 덮치며 우리들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것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략하며 한반도를, 세계를 공포로 몰아갔다.

그 코로나19가 이번에 확인시켜 준 것 중 하나는, 몰랐는데 우리가 선진국이었다는 것! 우리에겐 정직한 리더십과, 마음을 모을 줄 아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다른 오늘이 답답하고 불편하고, 사람에 따라 캄캄하기까지 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감염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도 전파자인 줄 모를 수 있다는, 바이러스의 엄청난 파워 때문에 거리 두기가 언제 끝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입국자가 있어 그 기간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각오는 했어도 불편했다. 생활 여기저기서 부딪쳤다. 처음 며칠, 시간은 그야말로 천천히 흘렀다. 갑갑한 것도, 문득문득 화가 나는 것도 다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피로를 느꼈다. 사실 느낌은 상호적인 것이어서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거기도 참고 있는 것일 뿐.

우리 집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보다도 빠른 속도로 세계를 바꾸고 있는 코로나19가 가족 관계까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 믿어왔던 관계들이 여기저기서 삐걱거린다. 예상치 않게 많은 시간을 함께 붙어 있게 된 식구들의 삶의 방식이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집이 감옥이 된 것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갑갑함이 내 기대를 배반하는 상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한 답이 없다.

내 보기에 가족은 돈을 나눠 쓰고,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함께하는 시간이 마음의 지옥이라면? 가까운 사람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얼마나 피상적으로 살았는지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는 몸을 써야 한다. 전문적으로는 호흡관찰을 통한 명상이나 참선이 있지만 분석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은 목적이 없는 일, 허드렛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아침저녁으로 걸레질을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집 구석구석을 닦고, 책장을 정리해 필요 없는 책들을 골라내고, 냉장고를 정리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차분해지면서 내가 보이고, 어머니가 보였다!

밤늦게까지 TV를 시청하는 어머니가 싫기만 하더니 그 행태 속에서 어머니의 외로움이 보였다. 연민이 생기니 생각이 저절로 바뀐다.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가짜 뉴스를 복음인 양 전할 때도 끝까지 차분하게 듣는 힘이 생겼다.

가까운 이의 흉을 보게 되는 이유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존중할 수 있을까. 타인이 ‘나’를 바꿀 수 없듯 ‘나’도 타인을 바꾸려 하면 안 된다. 거기서 저항이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사실 나 자신도 나를 바꿀 수 없지 않은가. 심리적인 변화는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잘해 주는 것도, 안타까움도 아니다. 사랑의 기초는 이해다.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처음과 달리 가짜든 진짜든 ‘뉴스’가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종종 고맙다는 말을 했다. 우리도 어머니가 고마웠다.

일상을 깨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2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새로운 습관이 생길 시간! 어머니가 가고 나니 내게는 습관이 붙었다. 매일 걸레질하는 습관, 요가, 그리고 가까운 사람에 대한, 나의 과도한 기대를 살피고 내려놓는 습관. 지금은 어머니와의 2주가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만나는 시간의 선물, 생의 선물은 종종 그렇게 짐의 형태로 찾아든다.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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