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11-19 03:55
신의 정치학(조건상 목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7  
신의 정치학 (God’s Politics)

종교와 정치 이야기?

보통 사교석에선 종교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피해야 하는 것이 에티켓으로 되어있다.  사람마다 종교와 정치적 생각이 다르고 관심도 다르기 때문에 종교나 정치에 대한 논쟁이 생기면 사교 분위기를 망치게 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의 생각 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아니하고 자신의 말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견해도 들어 본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틀리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  신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 할 수 있으나, 신에 관한 나의 생각이나 신앙은 절대적일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절대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불편한 두가지 주제를 한꺼번에 다루게 되었다. 다시 한번 폭 넓게 정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이다. 

정치는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필자는 종교인이다.  신앙인들 중엔 “정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관심이다. 정치는 썩고 더러운 곳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종교인이라 하면서 왜 정치적 관심을 갖는가?  사이비 종교인이 아닌가?  정치와 구원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종교인이 정치에 관심 갖는가?  이렇게 필자를 공박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두 가지 나쁜 일이 나타난다. 하나는 불의해서 나타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무능해서 나타나는 일이다. 도둑질 하는 나쁜 일은 불의 한 도둑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그러나 도둑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둑을 맞는 일도 나쁘다. 그것은 자신이 무능해서 도둑을 막지 못해 맞게 되는 나쁜 일이다. 
만일 어떤 종교지도자가 나쁜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의 행패를 눈감아주고 지지하기 위해  “모든 권력은 신으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권력에 복종하라!”고 윽박지른다면 그 종교지도자는 나쁜 종교지도자요, 나쁜 신앙이요, 신학으로 말하면 그것은 나쁜 신학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더러운 사람들이 하는 것, 그런 더러운 권력자를 신이 보냈다”고 주장하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온 “모든 권력은 신으로부터 왔다”고 말한 사도 바울의 이야기는 로마의 평화시대 (Pax Romana)에 전쟁을 그치게 한 왕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은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권력자들은 국민의 손으로 뽑는다. 만일 나쁜 대통령을 국민이 뽑아 놓고,”왜 신은 나쁜 대통령을 보내주셨는가?”하고 따진다면, 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선택한 것이다”고 말할 것이다. 
  
신의 정치학은 신권정치를 말하는가? 

먼저, ‘신의 정치학(God’s Politics)이란 용어는 필자가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님을 먼저 밝혀 둔다. 이 용어는 “Sojourners’ 잡지의 편집자인 짐 월리스(Jim Wallis)가 쓴 책의 제목이다. 짐 월리스는 그리스천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책을 통하여 나쁜 종교지도자들에게  “우리 믿음은 도난 당했다”고 고발한다. 
신의 정치학이란 신권정치를 말하는가?  아니다. 옛날에는 지배자가 자신의 권력을 신으로부터 주어진 절대적인 것이라 주장하여 백성들의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 때 나온 것이 절대군주이다. 구약성서 시대에는 왕의 정치가 있기 전에 신권 정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말하는 신의 정치학은 신권정치의 관점이나 관심이나 발상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신의 정치학은 미국이라는 기독교문화의 국가에서 이야기되는 기독교 신학을 기반으로 둔 이야기이다. 신의 정치학은 정치적 파당이나 이념의 이상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신의정치학의 주된 관심은 전쟁이 아닌 평화이다. 그리고 평화에 걸림돌이 되는 어떤 정치공학에 대한 도전이다.  

신은 누구의 편인가? 

미국 남북 전쟁당시 아브라함 링컨이 한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신은 우리편 이라’주장하기보다 우리가 신의 편이 되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는 ‘신은 우리 편이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국가를 패권주의, 자기 의를 주장하는, 전쟁을 부추기고 전쟁을 선호하는, 나쁜 신학, 종종 탐욕스럽고 위험한 기득권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빠져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신의 편이 되고자 한다면,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부서지기 쉽고, 따 돌림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될 것이다. 신의 정치학은 기득권자 중심인 네 편 내편을 무시한다. 한국인들에게는 내 편 네 편의 편가름이 강하다. 그것은 아마 한국인의 가족주의 “우리”문화의 유산일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서로 아끼고 돌보는 따듯함이 있어 좋지만, 가족주의엔 문제가 있다. 즉 가족 밖에 사람에게는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배타적 내 편 네 편을 만들었다. 그래서 원수가 많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생께 이렇게 고했다. “밖에 선생님을 뵙고자 선생님 모친과 형제 자매들이 찾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이 보고를 듣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이며 누이냐? 누구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부모와 형제 자매이다.” 
“우편이냐? 옳은 편이냐?” “좌편이냐? 그른 편이냐?”가 문제이다. “우리 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의 편”을 찾는 것이다.  오른 편과 옳은 편은 다르고, 왼편과 그른 편은 다르다. 사람에 따라 왼 손잡이도 있고, 오른 손 잡이도 있듯이, 좌편 뇌가 발달 한 사람과 우편 죄가 발달 한 사람이 있듯이, 그 사람은 ‘ 좌편 사람이냐 우편 사람이냐’는 물어 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신 앞에 만민은 평등하고 누구나 살 권리가 있다

얼마 전 릭 스캇 플로리다 주지사는 알라추아 카운티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리처드 스펜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플로리다 주 필립스 센터에서 있을 연설과 집회로 일어 날 수 있는 폭동을 막기 위해서이다. 인종차별, 남녀 성차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나이 차별 등은 우리 사회나 어느 시대에도 있는 뿌리 깊은 사회적 문제이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인간에 대한 기본적 존엄성은 인정하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살 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또 다른 신의 정치학의 이슈이다.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똑 같이 햇빛과 비를 내리신다”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흔히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신의 선택한 민족이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람을 혈육적으로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누구나 부모와 형제 자매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같은 가족이다.  어떤 종류의 이기주의 이든 이기주의는 무조건 신의 편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두 핵심은 “믿음과 사랑”이다. 신앙과 사랑은 서로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한쪽 만 가지고는 완전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이기주의 신앙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창과 칼을 녹여 보습과 낫을 만들라

뉴욕시의 국제연합 건물 앞에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남자를 묘사하는 조각 상이 서있다. 이 조각상은 구약성서 미가 4장 3절에 예언”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에 근거하여 만들어 진 것이다. 세계 무기 판매액 300억 달러로 증가한 나라1위는 미국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면서 전쟁무기를 만들어 파는 세계의 제 1위 국가이다. 이 무기는 개발도상국들에 판매되고 있다.  창과 칼은 전쟁 무기이고, 보습이나 낫은 농사를 지을 때 쓰는 농기구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하는 것” 즉 세계 평화는 신의 정치학의 모토이다. “칼과 창을 쳐서 보습과 낫을 만들게 하는 것” 즉 평화이다. 화평케 하는 역할이 기독교의 역할이다. 
한국은 군사적으로 남한과 북한이 대립되어 있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평화이다. 남북한이 가지고 있는 군사무기를 산업화로 사용한다면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화해와 용서가 있는 평화

성서에 삭개오 란 사람이 소개되었다. 사람들이 수군수군한 소문에 의하면 그는 부정축제자요, 매국노다. 그러나 그가 나아와 예수께 고백하기는 “만일 자신이 남의 것을 불법으로 취득하거나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가 갚겠다”고 하였다. 기독교의 죄 용서받는 법은 이 중적이다. 첫째는 신의 법을 어긴 것에 대한 신으로부터의 용서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배상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후자의 것은 무시한다. 오히려 신에게 용서 받았음으로 후자의 용서함은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있지만 정의가 없는 것이다.  “신의 정치”가 말하는 평화는 “ 정의와 사랑이 있는 평화” 이다.
요즈음 한국에서 정부가 적폐 청산한다니까 ‘그것은 정치적 모함이고 복수이다’고 항변 한다. 이것은 사회정의를 따르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알베르 카뮈 말하기를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라 했다. 

사랑과 정의가 포옹하는 평화

평화는 원수를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신의 정치학은 평화의 정치학이고, 과거를 치유해야 하는 정치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진솔한 대화와 용서함과 용서 받음이 말과 행동으로, 사랑과 정의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사랑과 정의의  포옹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무의미하고, 정의가 없는 사랑은 맹목이다.  정의와 사랑이 없는 평화는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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