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6-28 00:24
목회자가 보는 세상: 널뛰기와 시소(조건상 목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7  

양극화 시대의 널 뛰기와 시소

최근 대통령 통일안보 특보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미국 와싱톤의 한 민간단체인 '아시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한반도 위기와 한미동맹"세미나에서 자기 의견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한미합동훈련 축소 가능성' 발언이 한국 정가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우리도 한미합동 군사훈련규모를 미국과 상의하여 축소 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이다. 남북간 군사적 대결로는 악순환 만 불러 올 뿐 통일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뻔한 일이다.

얼마 전 북한이 계속적으로 미사일을 쏘아 올릴 때, 미국은 이를 여러 번 경고하였지만 그 경고를 무시하자, 미국은 미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빌슨함의 뱃머리를 한반도 해역으로 돌렸다. 이를 알아 채린 중국은 시닝에 있던 미사일 방어능력이 있는 최신형 이지스함을 한 반도 주변의 서해로 출동시켜 첫 실탄훈련을 벌렸다. 북한의 핵무기 폭발로 인해 한반도엔 유사 전쟁훈련과 같은 긴장감이 돌았다. 마치 누가 더 상대방에게 군사적 충격을 주는지 내기하는 널 뛰기 훈련 같았다

이 쪽이냐 저 쪽이냐

한국의 사드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긴장관계 속으로 빠졌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사드배치 지연에 대하여 격노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정부는 한미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 사드배치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앞으로 미국과 계속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서둘러 격노한 트럼프 대통령 진화에 나섰다.

이미 중국은 경북 성주에 전격적으로 사드가 배치된 사실을 알고 강한 불만과 경고의 메시지를 한국 정부에 보내 온 바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는 미국의 대중국 미사일방어체제를 위한 전초기지를 만드는 행위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실현과 지역평화에 도움이 안된다. 사드를 철수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왔던 중국과의 관계가 훼손 될 줄 알라"고 경호하였다이 경고 후 중국은 실제로 한국 경제에 압박을 가했다. 한국이 그동안 추진하고 중국시장에 펼치던 관광사업, 예술문화사업, 교역사업을 중지시켰다. 이로 인한 한국의 경제 손실은 1년간 85000억원이 될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어찌 보면, 사드문제는 한국이 미국에게 "지금 사드가 필요하니 나에게 팔라"고 구매를 요청하였다기보다는, 미국이 오히려 한국에게 "이것이 필요할 테니 이것을 사가라"고 강매한 것처럼 보인다. 하여튼 한국의 사드배치 문제로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한 쪽을 버려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이것이 한국이 처한 딜레마다. "미국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중국을 선택할 것이냐?"

한인이민가정의 갈등

이쪽이냐? 저쪽이냐? 양극화로 인한 갈등은 한국정치에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민가정 속에도 있다. 이민초기 한인가정에는 "개와 고양이 갈등"이 있다. 개와 고양이의 갈등은 이민 1세인 부모와 2세인 자녀간의 갈등이다. 개와 고양이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다. 개와 고양이가 사는 환경은 똑같다. 그러나 습성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 고양이는 장소를 매우 중요시 한다. 고양이는 가끔씩 주인의 무릎에 안기기는 해도 금세 주인의 무릎을 떠난다. 고양이는 자기 주인이 집에 있든 없든 관심이 없다. 그저 자신이 그 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개는 다르다. 개는 자기 주인을 따라 나서기를 좋아한다. 주인이 어딜 가든 주인을 따라가고 싶어한다. 이민 1세 부모는 고양이 타입이다. 1세들은 자기의 집처럼 문화를 지키려 한다. 미국땅에 살면서 옛날 음식, 언어, 습관, 풍습, 관계들을 지키려 한다. 이것이 고양이 타입이다. 그러나 2세들은 새 땅의 주인인 미국을 따르려 한다. 주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르고 싶어한다. 2세들에겐 새 음식, 새 언어, 새 문화와 새로운 가치와 친구가 중요하다. 즉 미국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개의 타입니다

이민 2세들의 정체성의 혼돈은 내가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는 선택의 갈등에서 온다. 2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한국적 미국인이다"라는 양쪽을 품는 창조적 정체성이 아닐까? 이것이냐? 혹은 저것이냐?"란 선택은 항상 양극화와 갈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신자유경제가 불러 온 사회적 양극화

얼마 전 영국 런던에 있는 그렌펠타워 아파트에 화재참사가 일어났다. 이 화재참사의 원인은 물론, 화재경보기 미작동, 스프링클러 미비, 당국의 화재위험 경고 묵살이라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영국 보수정당 정부의 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이 이민자 저소득층이란 점이다. 그렌팔타워 주변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자와 저소득층의 사람들인데, 그 아파트는 값싼 외장재 공사로 주변을 미관상 그럴듯하게 지은 건물로 내실로는 아파트 입주인들의 안전을 전혀 무시한 자본가의 횡포가 드러낸 화재사건이라 말한다

신자유주의경제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과거에 찬란하였던 미국의 기업들이 과거 성공에 안주함으로써, 상품의 혁신과 새 생산기술로 만들어내는 일본 독일 등이 만들어 내는 자동차 철강 복사기 등 많은 중요산업의 상품들에 경쟁에서 뒤떨어짐으로 질이 낮은 상품을 높은 가격에 팔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미국의 대기업들은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고임금과 안전된 직장을 제공 할 수 없게 되어 경영의 새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자본주들은 싼 임금을 찾아 저개발 국가로 공장을 옮기에 되었다. 게다가 정밀전자산업의 발전에 따른 공장의 자동화로 인해 고임금의 안정된 노동자가 불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노동을 컴퓨터나 로봇이 대신하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이다.

신자유주의경제로 나타난 현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자, 정부는 기업들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치열한 국제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시켰지만, 결국은그 결과로 기업은 안정된 유연노동을 채택함과 동시에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시켜 실업자가 급증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비정규직, 또는 파트타임 노동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신자유경제는 자본의 세계화, 거대자본의 독점 생산화, 그리고 자본가 이익의 극대화를 만들어 주었고,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을 불러오게 하였다

시소와 사회정의

서울대 명예교수 이정전 박사에 의하면 "한국의 진짜 주적은 불평등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사회의 모든 갈등의 원인 속에는 불평등이 주로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 단서로, '한국의 청년과 노인의 자살율은 경제협력개발 기구 회원국 36개 국 중 세계적 1위로 나타났음에서 찾아낼 수 있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켜졌고, 이는 자살율, 이혼율, 우울증 관련 환자를 증가시켰다불평등사회는 사회를 양극화로 몰아가고 있다. 이 경제적 불평등의 주범이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이다. 양극화의 갈등 속에 있는 이 경제구조가 한국의 촛불혁명을 불러왔다고 본다.

내가 낮아지면 상대가 높아지고, 상대가 낮아지면 내가 높아지는 시소게임은 이치에 있어서는 널 뛰기와 같지만, 그 철학은 널 뛰기와 다르다. 널 뛰기는 경쟁을 부추기나, 시소는 평등을 유지토록 한다. 널뛰기는 이익과 손해에서 양극화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시소의 높아지고 낮아짐을 놀이를 이용하면 즐거운 평화를 만들어낸다. 시소의 철학은 균등한 원리에 있다.

오늘날 사회정의는 이것이냐? 혹은 저것이냐의 선택 중 하나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 양쪽을 품는 매개성(Betweenness)에 있어야 한다. 특히 산업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용주와 고용인, 기업인과 노동자간의 이익분배로 말미암은 갈등, 또는 소득차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문제는 한쪽 편에서 만 보아서는 안된다. 사회의 모든 가치, 즉 자유, 기회 소득과 부, 인간의 존엄성 등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사회구성원에게 분배 되어야 한다. 이것은 서로간의 배려와 나눔의 정신으로 만 가능하다행복의 안목을 나 자신의 지위나 소유에 두지 않고 사회적 또는 이웃과 평준화하려는 노력에 둔다면 이것이 사회정의다.

 

 


최고관리자 17-06-28 00:29
 
둘 사이를 잇는 매개성의 역할이 바로 교회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다왕국의 아사 왕이 둘 사이에서 돕는 하나님을 기도한 것처럼,
우리 시대의 경계와 경쟁의 공간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록 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는(창조하는) 교회의 사명이고,
그리스도가 우리 시대에 하는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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