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2-28 00:17
법과 사랑(조건상 목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32  

법과 사랑

'죄와 벌'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사회가 있는 곳에는 늘 존재한 중요한 관심사였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제일 먼저 언급한 주제도 "죄와 벌"이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따 먹은 죄와 그 벌로 에덴 동산에서 쫒겨났고, 그 후로 인간은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죄와 벌'은 범역사적 주제 일 뿐만 아니라, 인간실존적 이슈이다. 그리고 이 죄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법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법이 있다. 하나는 사회/또는 국법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법(기독교적 관점에서)이 있다. 세상 법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고, 하늘의 법은 주어진 법, 변경할 수 없는 신의 법이다. 하늘 법은 마치 자연법과 같다. 줄에 매어 공중에 달려있는 물체는 그 물체를 붙잡아주는 줄이 끊어지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자연법칙이다. 어느 누구도 이법칙을 변경 할 수 없다.

세상 법은 그 시대와 역사가 만들어낸 변화하는 법이다. 예를 들면, 유신헌법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그 법으로 자기 이익을 변호하기 위해, 그들 기준으로 만든 법이었다. 그러나 유신시대가 지나면서 그 법은 폐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적어도 법은 존재해야 하고, 그 사회의 정의를 지켜야하는 것이 법의 존재이유다.

그러나, 하늘의 법, 신의 법은 인간에게 죽음보다는 생명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으로 그 근거는 사랑에 있다. 성서의 메시지는 '인간은 죄와 벌에서 해방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구원'이라 말한다. 신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아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죄의 문제를 도외시하고서는 깊은 신앙생활에 도달 할 수 없다. 

솔로몬의 두 여인 재판

솔로몬의 "두 여인 재판" 이야기는 성서에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같은 집에 살던 두 여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불행히도 두 아기 중에 한 아기가 죽었다. 두 여인이 서로 죽은 아기는 남의 아기이고 산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면서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청했다. 솔로몬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생각하다가 어누ㅡ 누구에게도 편파적이지 않다고 생각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러면 "이 산 아기를 칼로 둘로 나누어 가지게하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 판결은 너무나 잔인한 판결이다. 그리고 한 여인에겐 너무나 억울한 판결이다. 그러자 한 여인은 울며 불며,"그러면 안 됩니다. 제가 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양보하겠습니다. 그 아기를 죽이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그러나 다른 여인은 그 판결에 항의 없이 그대로  따르겠다했다. 사실 "이 산 아기를 칼로 나누라"는 솔로문의 판결은 진짜 아기의 어미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트릭이었다. 이 판결로 솔로몬은 진짜 아기 엄마를 찾아낼 수 있었다.

판사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하며, 사실과 거짓을 밝혀내야 한다. 요즈음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를 재판하는 과정에 있다.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가려내 탄핵을 판결해야하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대한 판결 사건이 될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에게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예수님의 간통사건 재판

성서에는 "간통사건"에 대한 즉심판결 사건이 소개 되어있다. 어떤 종교적인 사람들이 한 여인을 간통한 여인이라며 예수님 앞에 끌고 왔다. 그리고는 종교적인 재판을 해달라고 했다. 구약의 법대로 그 여인에게 돌로 칠 것인지 아니면 자비를 베풀어 용서 할 것인지 판단해 달라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즉심재판 판결문을 이렇게 내렸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사실 이 판결문은 간통한 여인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그 여인을 고소한 사람에게 한 판결문이다.

사실 이 간통한 여인을 기소한 사건의 핵심은, 종교모리배들이 예수님를 로마법이나 유대종교법에 기소할 술책으로 만들어 놓은 트랩이었다. "돌로 치라" 했으면 살해 방조죄로 로마 법에 고소 할 것이고, "용서해라"했으면, 유대교 율법을 어긴 죄로 종교재판에 고소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이렇게,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란 판결로 종교모리배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자리를 떠나게 만들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한국사람들에게 간통사건은 가십거리가 되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한국언론은 가끔씩 어떤 간통사건을 이슈화 하곤했다. 오래 전에 언론은 채동옥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을 보도하였다. 사실 채동옥 검찰총장의 혼외자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대선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압박하기 위해, 권력기관이 언론에 퍼트려 언론재판으로 만든 사건이다. 채동옥 씨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언론재판으로 검찰총장이란 공직에서 떠나게 되었다. 

흥미있게도 "너희 중에 죄 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외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데모 군중 속에서 터져나왔다. "모두가 죄인인데 누가 누구의 죄를 탓 할 수 있겠느냐"는 항의처럼 들린다. 이 외침은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반드시 틀린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그 녀가 간통했다고 해서 기소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통사건이라면, 고소인의 배우자와 타협할 문제이지 국가가 관여 할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이 있다. 하나는 세상법에 저촉한 범죄인(the crime)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의 법에 따라 스스로 고백하는 죄인(sinner)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다"란 말은 하늘법에 따라 스스로 고백하는 종교적 죄인이란 말이다. 세상 법정은 종교적 죄인(sinner)을 재판 할 수 없다. 세상 법정은 단지, 범죄인(the crime)을 재판하는 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야 할 재판정은 두 곳이다. 하나는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범죄인으로, 다른 하나는 신의 법정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서게 되는 것이다.

두 여인의 불륜사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두 여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여인과의 관계의 사건이다. 이 두 여인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불륜이란 말은 사전적 해석으로 본다면, '사람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닌 것'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불륜이란 말을 주로 남녀간의 관계를 윤리에서 벗어났을 때 사용되어왔다. 흥미롭게도, 박대통령측으로 국정반대 변호인들의 주장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최순실(61세)와 고영태(41세)와의 연인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이라 주장한다. 국민들은 두 사람 사이가 연인관계였는지 아닌지엔 관심이 없다. 국민들의 관심은 그 이상의 불륜, 최여인과 박근혜 대통령, 두 여인의 비양심적이고 더러운 영혼들이 서로 교합해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국가적 불륜사건에있다.

한 가정을 가진 부부 중 한 사람이 가정을 떠나 다른 남자나 여자를 비밀리 만나서 남녀의 정을 나누는 관계를 흔히 불륜이라 말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무회의란, 공식적인 나라를 꾸며갈 가정을 떠나, 몰래 비밀스런 일을 다른 사람과 의논하고 결정한다면, 이것은 국가적인 불륜에 속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최순실의 사건의 실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최순실의 비리를 모르고 있었고,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관계가 없다면, "왜 774억 원을 최순실에게 맡겼는가?"고 묻는다. 이것은 분명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실세인 최순실과 관계하여 국정농단으로 이끌어간 국가적 불륜사건이 된다.

들었던 돌을 내려 놓고, 촛불을 들라

법정에 나온 피고인들은 왜 모른다고 거짓 말을 할까?  거짓 말하는 자체가 자신이 한 일이 불법이고 잘 못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았다면 왜 구태여 모른다, 또는 아니다고 거짓 말을 해야하나?

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이 있을까?  진실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사람들은 감정이나 어떤 신념은 진실보다 낫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불쌍하다"는 감정이나" 나는 그 사람을 믿는다"는 신념은 결코 진실보다 못한 것이다. 

용기란, 진실을 사실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시대엔 용기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 박근혜 대통령도 용기있기를 바란다. 도스토 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법정에서는 자신의 살인을 고백 못 했어도, 연인 소냐 앞에서 고백했다 "자신이 살인자"라고. 그리고 회개를 위해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었다.  용기 있는자는 사람들 앞에서의 수치심보다 신 앞에서의 죄책을 더 중요시한다.

법의 목적은 죄와 벌을 통하여 새롭게 살도록 도와주어 갱신하게 하는 것이다.  용기있는 재판을 위해, 분노로 들렀던 돌을 내려 놓고, 진실을 위해 촛불을 들자!  용기있는 재판관, 용기있는 증인, 용기있는 피고인을 위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이 없는 정의는 무의미하고, 정의없는 사랑은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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