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2-07 00:48
불타는 욕망과 분노(조건상 목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624  

불타는 욕망과 분노

지난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 아침 웨스트 필드 올드 오처드 쇼핑몰 앞으로 지나가다가 파킹랏과 주변에 자동차가 미어지도록 정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몇 만 명이나 여기에 모였을까?" 그런데 한국에서 광화문에 백오십만 명이 모였다면 그 인파는 얼마나 될까?"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어떤 무엇이 150만 명의 시민을 광화문광장으로 끌어드렸단 말인가?" 흥분에 찬 질문을 해보았다. 군중을 끌어들이는 힘이나 한 인간이 무엇에 정신이 팔려 달려가게 하는 힘이나 그 힘의 원천은 다 같은 것 같다.  

전차(Chariot)를 끌고 달리는 두 필의 말

고대 심리학에서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전차 한대를 끌고 달리는 말 두필'과 같다고 말한다. '벤허'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듯, 벤허가 탄 경주 전차가 불 뿜듯 달리게 한 것은 두 필의 말의 힘에 있었다. 플라톤은 두 필의 말, 이것들이 바로 인간을 끌어내는, 군중을 끌어내는 두 힘이라 보았는데, 그 두 필의 말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는 "욕망"이요, 다른 하나는 "분노" 이다인간의 욕망과 분노는 인간의 삶을 끌어낸다. 아마도 블랙 프라이데이에 쇼핑 몰로 끌어들이는 힘은 갖고 싶은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일게다. 그러나 이 욕망보다 더 큰 힘, 즉 광화문으로 백오십만 명을 끌어낸 힘은 시민들의 분노이겠다. 시민들의 가슴엔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여인에게 우롱당했다는 분노가 넘치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집안에 그냥 남아있을 수 없어서 한 손엔 촛불을 다른 한 손엔 "박근혜 퇴진"이란 푯말을 들고 광화문거리로 뛰어나오게 되었는데, 그 숫자가 모여 백오십만이 된 것이다백오십만 분노의 집결이다.

"너 자신을 알라!"

국민일보에 의하면, 최근 박근혜대통령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대통령의 퇴진이 명예롭다고 조언하자', 박대통령은 "내가 뭘 잘 못했는데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이다

옛날 그리스 델피에 있는 신전에는 그리스어로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 란 금언이 쓰여있었다. 이 금언은 소크라테스의 파라독스라 흔히 일컫는 유명한 말과 연관이 있는 말이다소크레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기를 고소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무엇을 안다고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른다는 면에서는 이 사람과 마찬가지 이지만, 내가 이 사람과 다른 것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적어도 내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파라독스(역설)이다이 것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의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논리대로 말하면 세상엔 세 종류의 무지한 사람이 있다첫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둘째는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세번째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이 세 사람 중에 가장 모르는 사람은 잘못 알고 있으면서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까지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뭘 잘 못했는데요?"란 말에는 "나는 잘 못한 것이 없다"는 뜻이든가 아니면 "나는 내가 뭘 잘 못했는지를 모르겠다"는 표현일 게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악의 무지인이나 차악의 무지인에 속한다아는 것이 없어도 지혜로운 사람은 적어도 "나는 모르고 있구나!" 라고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 하야를 결단할 수 있다.   

숭고한 분노

필자는 종교인이다. 종교인이 분노하면 이것은 악한 것인가욕망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나, 분노는 정신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정의감에서 나오는 분노는 의로운 분노이다. 성서에 보면, 예수께서도 분노하신 적이 있다. 예수께서는 성전 뜰에서 소, , 비둘기 등을 팔고 있는 장사꾼들을 보고 분노하셨다.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분노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그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그 장사꾼들과 그들이 장사하던 동물들을 성전 뜰에서 쫓아내셨다.

숭고한 분노는 한 개인의 원한이나 복수심에서 나오는 행패와는 다른 것이다. 시민은 몽둥이나 돌맹이를 든대신 촛불을 들었다. 이것은 의로운 분노이고 숭고한 분노이다진리는 불의에 분노한다. 선과 악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숭고한 분노가 없는 사회, 거룩한 분노가 없는 교회, 의로운 분노가 없는 국가엔 희망이 없다.

백오십만 촛불 속엔 숭고한 분노가 타오른다

백오십만 타오르는 숭고한 분노 속엔 탱크나 군화로도 짓밟힐 수 없는 힘이 있다. 참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분노 속에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북한의 김정은도 보고 놀랬을 것이다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백오십만의 시민의 분노의 집회를 보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서, "이것은 종북파들의 음모이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기독교 목사들 속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고 답답함을 느낀다. 구약의 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많아서, "괜찮다 괜찮다!"고 백성들을 거짓으로 인도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 날로 말하면, 권력과 정권에 시녀 노릇한 사람들이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말하기를 "절대권력은 절대로 망한다" 했다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는 권력의 눈에 어두워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뭘 잘 못했는데요?"란 말이 나온다촛불과 함께 참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시민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고 있다. 제대로 된 정치가라면, 이 시민들의 불타는 열망과 숭고한 분노를 보고서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권위와 권력을 위해서 함부로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둠을 몰아내고 새 변화의 빛을 밝혀주는 백오십만의 촛불을 지켜보면서, 그 촛불 속에서 그동안 국가주의로 무너졌던 인간의 존엄을 다시 세워주고, 새로운 민주주의로 다시 변혁되는 비젼을 보는 것 같다. 사사로운 바쁜 생활 중에도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숭고한 분노의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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