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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연속설교 17)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2-10 (월) 02:19 조회 : 233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삼하 11:2-5, 시편 51:3-5, 9-11)

1. 오늘은 성령에 관하여 말하려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깨닫게도 하시고, 감동도 주시고, 열심도 주시고, 열매도 맺게 하십니다. 우리를 참되게 살게 합니다.
마치 사랑의 힘과 같습니다. 사랑이 감동을 주고, 적극적이게 하고, 서로 사랑하여 결혼도 하고 자식도 만들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믿음생활을 할 때, 항상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사랑을 바라는 것과 같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보다 적극적으로 살지 않습니까?
내가 혼자 믿음생활을 하려 하면 힘이 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놓치게 됩니다. 부부지간에 사랑이 없으면 서로 헤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도우시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항상 성령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2. 시편 5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회개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큰 죄를 짓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한 기도입니다. 
중요한 몇 구절만 말씀을 드리면: 
(1)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2)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3)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4)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3. 다윗이 이러한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다윗 왕이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루는 저녁 때가 되어 잠자리에서 나와 옥상을 거닐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잠자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이 나태하였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나태함도 죄의 하나로 여깁니다.
옥상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를 보내 알아보았습니다. 헷 사람인 우리야 아내 밧세바라는 여인이었습니다. 
헷 사람이란 힛타이트 족속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부터 이스라엘을 도운 민족입니다. 헷 족속으로 다윗을 도와준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히멜렉과 우리야입니다.
아히멜렉은 제사장으로 다윗을 도왔고, 우리야는 충성스러운 장교로 다윗을 돕습니다. 우리야가 전쟁터에 나간 틈을 이용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자기 침실로 불어들인 것입니다.

4. 밧세바가 임신을 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전정터에 나가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기별을 보내, 우리야를 궁궐로 보내라고 합니다. 
우리야가 돌아오자, 왕은 맛난 음식과 함께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집으로 보냅니다.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하므로 왕과의 임신을 속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전쟁 중에 집에서 잘 수 없다면서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의 숙소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몇 번의 술수가 먹히지 않자, 요압 군사령관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편에 보냅니다. 우리야와 함께 적을 공격하였다가, 우리야만 남겨둔 채 모두 철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야를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야가 죽습니다. 우리야가 죽고 장례식을 마치자 마자 밧세바를 아내로 맞아드립니다.
삼하11: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5. 이런 내막을 선지자 나단이 알게 됩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냅니다. 다윗의 죄를 책망하고자 합입니다. 나단은 지혜롭게 말을 합니다. 
어떤 성에 짐승이 많은 부자가 있고, 어린 암양을 자식처럼 키우는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잣집에 손님이 오자, 자신의 짐승이 아까워서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다윗이 노발대발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악한 놈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놈을 마땅히 죽일지니라”고 다윗이 말합니다. 그 때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부족할 것이 없이 모든 것을 주셨건만,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야를 적에게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는단 말입니까?”
나단 선지자는 다윗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다”고 말합니다.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던 것입니다. 다윗은 즉각 회개합니다. 
삼하 12:13-14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였나니 당신이 죽지는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6. 다윗은 즉각 회개하였고, 하나님도 즉각 용서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신앙의 풍조를 보면,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2가지를 놓치지 말 것입니다.  
하나는 다윗이 회개를 하고 용서를 받았음에도, 그 때 잉태된 자식은 죽은 것입니다. 죄의 결과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용서받을지라도, 죄로 인한 상처는 남는 것입니다.
둘째는 회개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51편의 말씀을 보면, 다윗의 회개가 얼마나 가슴 아픈 회개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라고 회개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여”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가 사람에게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생각할 때에 사람에게 잘못한 것을 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알고 결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 것입니다. 

7.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라고 하였습니다. “목전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사람들만 속이면 모든 것을 속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우리야만 죽고 없어지면 이것에 대하여 시비를 걸 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는 말 속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지었음을 말합니다. 사람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는 고백에는 다윗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모습입니다.

8. 두번째로,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어찌 다윗은 자신의 죄를 자기를 낳은 어머니에게까지 소급하는 것일까요?
상호간에 갈등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부모님까지 들먹이는 것은 가장 괴로운 것이지 않습니까? “도대체 당신 부모에게서 어떻게 배웠기에 그 모양이냐?”는 식의 말은 절대로 하지 말 것입니다.
다윗이 어머니까지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뿌리가 깊은 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의 뿌리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있었던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남의 여자를 탐한 것이 이번 한 번 만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 여자를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자기 본성 속에 이런 죄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내인 아비가일을 취할 때에, 아비가일의 남편이 죽자, 아비가일을 오라 하여 자기의 아내로 삼았던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아내를 데려오는 것이지만, 그 전에 먼저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본성 속에 이런 정욕이 있음을 솔직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기 속을 다 뒤집어 놓고 그것을 회개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9. 셋째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자신도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에게 새롭게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회개는 지금 당한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려 함이 아닌 것입니다. 철저하게 밑바닥부터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새롭게 살고자 하는 그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정직이란 견고함을 말합니다. 정직은 글자대로 바르게 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얼마나 흔들리며 살았는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주지 않고서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회개가 얼마나 진정한 회개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0. 이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고 기도합니다.
“쫓아내지 말라”는 것은, 인생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어디에 희망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잡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합니다. “거두지 말라”는 것은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덮어주었다가 다시 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이불로 우리를 덮으심으로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이불을 벗기시면,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습이 모두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것은 주의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의 영을 거두어 가면, 자신은 그냥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이렇게 회개할 수 있음도,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음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아니면, 자신은 완악한 존재로, 회개조차도 무시하는 뻔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이토록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음이 좋은 것입니다. 그게 바로 주의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다윗의 기도에서 그의 진정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정한 마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 중심을 받아 주신 것입니다. 
다윗의 이 진정한 마음을 우리 모두 느끼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마음을 느껴야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이런 마음이 없으면 허전할 뿐입니다. 
저는 이런 진정한 마음이 성령이 다스리는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의 영이 살아 있는 참된 마음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다스리는 마음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은 참으로 귀합니다. 대충, 형식적으로 살기 쉬운 세상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참된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것은 거룩한 마음입니다. 성령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예배 드릴 때의 마음을 생각해 보세요. 예배 중에 이런 저런 생각이 겹치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허전하기만 합니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이면, 그 마음이 든든하지요.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진정한 마음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진정한 마음이 주의 성령에 감동된 마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라고 간곡하게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12. 다윗의 회개가 중요함은 그 진정성에 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전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셨기에 그의 용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진정한 회개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웨슬리는 회개란 믿음의 집에 들어가는 현관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려면, 먼저 회개의 현관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회개하지 않고는 믿음의 집 주변을 서성일 뿐이지, 믿음의 집에 들어가 안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회개의 현관에 발을 내 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회개할 때, 그 마음을 받으십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13. 저는 다윗이 회개할 때 사용했던 오늘 말씀의 용어들이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사용하였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둘째 아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속에 사용되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기를,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아버지께서 자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믿었기에 아버지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믿음생활을 하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 큰 자식이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모든 재산을 달라고 하여, 그것을 팔아서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하고, 거지 신세가 되어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물론 자신의 처지가 돼지우리에서 먹고 살아야 했기에 아버지의 집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좌절감도 있고, 절망감도 있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도 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발길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일어나서 달려가고 싶지만, 문뜩 무슨 염치로 아버지에게 갈 수 있느냐면서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고달파 달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가자, 말자 하는 생각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부정을 내려놓지 않고 바로 긍정적으로 전환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동안 부정적인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부정적인 것이 더 크고 더 아픈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것이 모든 학자들의 말입니다. 
옳은 줄은 알지만,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다면서 항상 실존을 앞세웁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14. 그러면 둘째 아들 탕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15:18-19,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그는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아버지 앞에서 회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열렸던 것입니다. 
눅15: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니”
그는 아버지께 달려가 회개하였습니다. 회개하였기에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편히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집에서 살면서도 마음이 편치 못하였을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이 아니라 새롭게 살게 하는 희망이고 능력인 것입니다. 회개는 병든 것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더러운 것을 씻는 능력입니다. 낡은 것을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15. 저는 회개란 비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비누로 손을 구석구석 씻어야 합니다. 씻을수록 바이러스를 방지합니다. 비누로 씻을수록 깨끗해집니다.
비누는 씻을수록 작아집니다. 자신이 녹아집니다. 녹아지고 작아질수록 깨끗하게 합니다. 회개란 비누와 같습니다. 회개할수록 자신의 욕심이 작아집니다. 자신의 죄가 녹아집니다. 하나님 앞에 점점 더 깨끗해집니다.
자신을 고집스럽게 지키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누처럼 녹아지도록 하세요. 비누처럼 작아지도록 하세요. 그만큼 귀하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누와 같은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바로 성령께서 붙잡아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라 늘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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