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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드는 자 수금타는 자(사무엘서 연속설교 8)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12-01 (일) 04:36 조회 : 231
[8] 무기 드는 자, 수금 타는 자 (사무엘상 16:13-18, 21-23)

1.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길 가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는 이야기입니다.
(1) 해와 바람이 길을 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자는 내기를 합니다. 바람은 자신이 있다면서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바람을 세게 불었습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갑자기 웬 바람이냐면서 외투의 단추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더 세게 불었습니다. 나그네도 외투가 벗겨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외투를 움켜 잡았습니다. 바람이 화가 났습니다.  강풍을 몰아쳤습니다. 나그네는 바람을 등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람은 포기하였습니다. 
이제 햇볕 차례입니다. 구름을 거두고 따뜻한 햇볕을 내려 보냈습니다. 나그네는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면서, 옷깃을 움켜 쥐었던 손을 놓았습니다. 계속 따뜻한 햇볕을 내려 보냈습니다. 이윽고 단추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가더니 겨드랑이에 땀이 나는지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이겼습니다.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이 이기는 것을 말해줍니다.
(2) 또 하나는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올라가는 마루에 켜놓은 촛불을 끄는 내기입니다. 
햇볕과 바람 중에 누가 이길까요?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대부분 바람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햇볕이 촛불을 끄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근데, 촛불을 킨 것이 어둠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면, 바람이 불어 촛불을 꺼도 어둠을 밝히기 위해 다시 킬 것입니다.  그러나 햇볕을 비춘다면, 또는 전기불이 들어온다면, 더 이상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반드시 강한 것이 이기지 않습니다. 때로는 따뜻함이 이기고, 밝은 것이 이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강한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도 강한 분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도 하나님을 강하신 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7:1, “아브람이 99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 시대에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출애굽할 때는 홍해를 갈라지게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함성을 지르게 하였고, 함성 소리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요즘도 이런 하나님이시기를 바라지만, 요즘은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도 청소년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내 인생 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내 인생이 승승장구하기를 바랬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해서 최종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인터뷰 때, 3성 장군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냐?”  저는 서슴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까지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용서하셨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강한 하나님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좋아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사야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는 힘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으로 진리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게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3. 오늘 말씀은 사울왕과 다윗이 처음으로 서로 만나게 되는 내용입니다. 왕이 없던 이스라엘에 사울이 초대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는 아말렉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습니다. 전멸하지 않고, 아각왕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좋은 것은 취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러한 사울 왕에게,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다윗을 찾아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지명자’로 세웁니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그날 이후로,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늘 “나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살게 마련입니다.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생각에 관한 글이 참 많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폴 발레리는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사는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깊이가 없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에 생각에 대한 좋은 대사가 나옵니다.
“생각을 조심해, 생각은 말이 되니까. 날을 조심해, 말은 행동이 되니까, 행동을 조심해, 행동은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해. 습관은 인격이 되니까. 인격을 조심해 인격은 운명이 되니까.”
인생의 운명이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것이지요. 내 생각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게 보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부정적이면, 좋은 것도 비뚤하게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4. 반면에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은 어떠했는가요? 
삼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하였습니다. 번뇌하게 한 것을 <공동번역>에서는 “공포에 몰아 넣었다” 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만 같은 것입니다. 생각 속에 온통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TV에서 보니, 외모가 단정하고 학식이 있어보이는 여자분인데, 뭔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그의 집을 보여주는데, 온통 쓰레기로 가득하여 발디딜틈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어떤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세상이고, 사람이고, 모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하니, 집안도 복잡한 것이고, 인생살이도 복잡한 것이지요. 
공포에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신하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신하로 삼고, 그로 수금을 타게 하여 악령을 쫓아내면 왕이 건강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수금을 잘 타는 다윗을 소개합니다. 사울 왕은 그를 불러서 곁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금타는 다윗에게 무기를 주면서 “무기를 드는 자”로 삼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에게는 수금타는 자가 필요한데, 사울은 그를 무기 드는 자로 삼은 것입니다. 사울은 신하들의 말을 듣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수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지켜줄 ‘경호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울은 수금 소리가 자신의 번뇌를 고칠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번뇌케 하는 것은 누가 자신을 죽일 것만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움을 떨쳐버리고자 정신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자기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왕의 모습입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고 왕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손에 무기를 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5. 어느날 사울 왕에게 악령이 강하게 작용을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신하 다윗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무기를 가지고 달려간 것이 아니라 수금을 가지고 달려갔습니다.
분명히 왕은 다윗에게 무기를 들게 하였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수금을 들고 달려간 것입니다.
다윗은 왜 무기를 내려놓고 수금을 가지고 달려갔을까요? 근데, 만일 다윗이 무기를 들고 달려갔다면, 사울이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다윗이 자기를 보호하려고 왔다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저 놈이 나를 죽이려고 무기를 들고 왔다”고 의심하였을까요?
나중에는 사울이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직접 자신이 창을 들고 있습니다. 
삼상 18: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사울은 다윗조차 믿지 못하고 스스로 창을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도 이러한 사울이 불쌍한 것이지요. 그래서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은혜스럽게 하프를 연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하프를 들고 달려간 것입니다. 하프를 연주하였습니다. 정말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주하였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지, 사울의 머리가 상쾌해졌습니다.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악령이 떠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병이 나음으로 상쾌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병고침의 순서를 아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금을 탄즉, 상쾌해지고, 병이 낫고, 악령이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병이 낫기 위해서는 생각이 상쾌해져야 하고, 상쾌해지기 위해서는 수금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수금은 은혜입니다.
줄을 뜯어서 울리는 하프의 소리가 사울의 영혼을 잔잔하게 한 것입니다. 머리가 깨운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아픈 것도 없어졌습니다. 아픈 것도 없어지니 악령도 할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6. 오늘 말씀에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무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수금을 들고 있는 다윗의 손에서 수금을 내려놓게 하고 무기를 들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강한 자가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어찌하든지 강한 자가 되고자 합니다. 지식이 강하면, 지식을 가지고자 하고, 돈이 강하면 돈을 가지려 하고, 지위가 강하면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일 뿐입니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습니까? 늙어가는 인생을 누가 붙잡아 주겠습니까?
무기는 가만두면 녹스는 것이고, 사용하지 않으면 고철에 불과한 것입니다. 강한 것은 일시적입니다. 사람이 이것이면 족하다고 여기는 것을 전도서에서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인간의 영혼은 은혜로 다스리는 것이지요. 따뜻함이 있어야 하고, 어둡지 않고 밝아야 하는 것이지요.
결코 무기가 인생을 지킬 수 없습니다.  사울의 심령을 붙잡아 준 것은 수금의 소리였습니다. 다윗이 손에 수금을 들고 하프를 쳤을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상쾌하게 되었다는 것은 <공동번역>에서는 “숨을 돌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막힌 것이 뚫린 것입니다. 자신의 심령을 답답하게 하던 것이 은혜의 소리로 뚫인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에게 은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금 소리와 함께 잠시나마 그에게 은혜가 임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에게 은혜가 계속되고, 나중에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였다면, 그의 인생이 남을 죽이고자 하는 인생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은혜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강한 무기였습니다.

7. 무기가 강하면 강대국이라고 합니다. 강대국은 핵무기를 소유합니다. 그런데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나라도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구약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대한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38-39,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은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러대며”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더 많은 핵이 그들 머리 위에 쏟아질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무기 수출 여섯번째 강대국입니다. 핵은 없지만, 핵을 대신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가 있습니다.
좁은 한반도에 핵이 수백개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핵을 사용하는 그 순간에 모두가 죽는 것입니다. 누가 자기 죽을 줄 알면서 핵을 사용하겠습니까?
무기로 이기겠다는 것, 힘으로 이기겠다는 것은 서로가 죽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수금 소리를 통하여 아파하는 영혼을 달래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수금으로 사울을 낫 게 해 주셨습니다. 

8. 저는 수금으로 사울이 상쾌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통해 인생의 해답을 얻습니다. 
이것은 의사가 <프리스크립선>을 써 주듯이 하나님의 처방전입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손에 수금을 드는 것입니다. 강함으로 이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무기를 들 것인지, 아니면 수금을 들 것인지는 각자의 믿음에 달렸습니다. 내가 무엇을 더 믿느냐에 따라 손에 잡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힘으로 이기겠다고 하였던 자들이 역사가 지남에 따라 역사의 큰 죄인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중에 전모라고 그런 분이 있지 않습니까?

9. 교회는 서로 만나서 반갑고 즐거운 파티장과 같습니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 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잔을 들고 파티장을 돌며 사람들을 사귑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잔을 부딪히며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그런데 들고 있는 잔의 재질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구리로 만든 놋잔이고, 어떤 사람은 도자기로 만든 머그잔이고, 어떤 사람은 깨지기 쉬운 유리잔입니다. 
놋잔을 가진 사람은 놋잔끼리 세게 부딪히며 웃고 즐거워합니다. 머그잔을 가진 사람은 예의를 차려 인사하고, 살그머니 부딪히며 조용조용 웃습니다. 유리잔을 가진 사람은 조심스럽게 잔을 부딪히며 차분하게 대화를 합니다. 각자는 자기 성향에 맞는 사람과 인사하며 즐거워합다. 그런데 문제는 재질이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날 때입니다.  
놋잔을 가진 사람과 유리잔을 가진 사람이 만나면 문제입니다. 놋잔을 가진 사람이 유리잔을 가진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놋잔을 가진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잔을 부딪히면 유리잔을 가진 사람의 잔은 여지없이 박살 나고 마는 것입니다. 만남은 엉망이 되고 유리잔을 가진 사람의 기분은 상할 대로 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놋잔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유리잔을 가진 사람 탓으로 돌립니다. “나처럼 놋잔을 가지면 될 것 아니야”라고 하면, 파티는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잔을 가지셨는지요? 나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잔이 깨지도록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10. 억지로 약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기를 가지고 힘으로 이겨야 하겠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에 수금을 잡고 은혜로운 음악을 연주하듯이, 내가 받은 은혜를 상대방과 나누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병도 낫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악한 기운도 떠나가는 것입니다. 
따뜻한 햇볕이 나그네의 외투를 스스로 벗게 하였습니다. 밝은 햇볕이나 전기불빛이 촛불을 켜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이 이기고, 밝은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손에 어떤 무기가 있다면 내려놓으시고 수금을 드시기 바랍니다. 
은혜 받은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것은 나의 삶에 하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고통 중에 있는 자들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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