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282건, 최근 0 건
   
십자가의 도(2)-속죄(화목)의 십자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4-08 (월) 06:36 조회 : 138

십자가의 도 (2) -속죄(화목)의 십자가 (마가복음 10:45, 로마서 3:21-26)

1. 십자가의 도에 관한 두번째 설교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탄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십자가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속죄의 십자가임을 말씀하겠습니다. 속죄의 십자가는 화목의 십자가이기도 합니다.

속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가리켜 보혈이라 합니다.

화목의 십자가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끊어졌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가 용서되므로 다시 회복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을 맞아주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2.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죄를 품고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가인과 아벨 형제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때려서 죽입니다. 죄가 더 큰 죄를 낳는 것이지요. 가인의 5대 손자 중에 라멕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아내들이여, 내가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인하여 소년들을 죽였도다. 할아버지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지라도, 나 라멕을 위하여는 그 벌이 칠십 칠배로다.”

“상처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죄가 더 큰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가인 할아버지의 죄가 자기에게 이르러서는 10배 정도로 커졌다는 말입니다.

           3. 한 때, “집안에 흐르는 저주의 계보를 끊으라는 말이 유행이었습니다. 죄가 대물림을 한다는 말이지요. 그렇기에 예수를 믿고 집안에 흐르는 그 죄를 끊자는 것이지요.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감으로 미신이 많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복이 말씀으로 사는 데 있는 것이지, 귀신이 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지요.

선천적인 당뇨병이 있습니다. 체질적으로 그 집안 사람들에게서 인슐린이 분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당뇨병을 가졌기에 자녀들도 당뇨병을 가지는 것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도 습관적이고 유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죄를 보고 자라기에 자식도 죄의 습성에 젖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 아버님은 약주를 즐기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타지에서 우리 동네로 살러들어온 어떤 젊은이가 저희 아버님께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께서 제 사촌 형에게그 놈 손좀 봐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값진 땅 다섯마지기를 팔아서 합의를 보았습니다. 저에게도 욱하는 성질이 있거든요. 목사가 되어 참고 사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처럼,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셨습니다.

이처럼 죄 없는 사람들이 땅에 충만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습니까? 그러나 죄가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고 죄를 따라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죄가 점점 쌓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죄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를 짓고도 하나님께 두려워하는 마음조차 없습니다. 아주 뻔뻔해졌습니다. 대신에 짐승 한 마리 잡아 바져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 된다고 가증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5.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살다가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서야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몸에 밴 죄가 쉽게 없어지는가요? 당장 하나님이 무섭고 두렵기에 죄가 마음 속으로 숨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내면에 깊이 뿌리를 내린 이 죄를 어찌 할런지요? 이기적이고, 가식적이고, 욕망적이고, 물질중심적인 이 죄를 어찌 해결할 수 있을지요?

이스라엘만이 아니지요.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제 아내는 목사부인으로 오직 저 하나를 위하여 산 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꿈에 뭐가 못마땅하였는지, 제가 아내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부부싸움을 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거룩하게 살려고 무척 애를 쓰던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내면 속에는 아내를 무시하고, 아내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죄의 뿌리가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제가 생각한 것은죄인은 꿈에서도 죄인이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6.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싫어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싫어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고,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지도 않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에서 가르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안식일 법이 최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자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정권에 의해, 예수님을 정치 선동자와 이단자로 몰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처형으로 죽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한 짓입니다.

7.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는가 하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게 내버려 두셨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마치왜 세상에 악한 자들을 모두 멸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일까?”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다 심판하기로 하신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자가 누구일까요?

성경은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죄 값을 치루고자 한다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모두 죽어야 하는 것이지요.

죄 때문에 모두를 죽인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은 너무 무섭고 잔인하시지 않은가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왜 뱀이 하와로 선악과를 따먹게 하였느냐고 할 수 있고, 차라리 사람을 만들지 않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도 삶이 너무 고달프면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8. 우리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직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일은 결국 예수님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죽음을 어찌 받아들이셨을까요? 옛날 나찌 정권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한 유대인들을 모두 잡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어느 가정의 일입니다. 그 집의 딸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죽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보상금을 자기들을 위하여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아이의 부모들은 그 돈으로 유치원 주변의 모든 도로에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안전 보호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데 쓴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물 한방울 피 한방울이 너무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의 피로 죄인들의 죄를 씻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가리켜 보혈이라 하는 것입니다.

           9. 그렇기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속죄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죄를 속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말입니다. 대속이라는 말도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갚아주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속전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 값을 갚았다는 말입니다. 배상했다는 말이지요.

잘못은 사람이 한 것입니다. 사람이 그 죄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능력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 값을 배상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께서 로마서의 말씀을 통하여 아주 잘 말씀하였습니다.

(1)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삼으셨으니

(4)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1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이라고 하였습니다. 속량=속전=배상 모두 같은 말입니다.  우리의 죄 값을 갚아주신 것입니다. 속죄하신 것이지요.

그렇기에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니지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값없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전적으로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냥 죄인이 아니라용서받은 죄인인 것입니다.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하게 하는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제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물이라는 말이 쉬운 말은 아닙니다. 좀 더 설명을 해 드리면 좋을텐데, 마땅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심청이가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제물로 던져집니다. 아버지 심학규의 눈이 그것 때문에 뜨여진 것은 아니지만, 심청이는 아버지 눈을 뜨기 위한 화목제물이 된 것이지요.

신이 심청이를 화목제물로 받고, 그 아버지의 눈이 뜨이는 길을 모색한 것이지요. 그 삶이 너무도 갸륵하여 심청이도 죽지 않고 살게 해 준 것이지요.

11. 그래서 하나님도 의롭고, 이것을 믿는 자도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심판하시지 않고, 예수의 피로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어찌 율법대로 심판하지 않고 내버려두자고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 값은 내 아들 예수가 대신 죽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움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된 것이지요.

믿는 자도 의롭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귀하에 여기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믿음을 가진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구원받은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아픔을 믿고 간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록을 남기면서 모두 이 말을 하였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십자가의 도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이치를 말하지요. 이 십자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12. 속죄란 영어로 Atonement입니다. At-One-Ment이지요. “한 덩어리”, “한 묶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덩어리란 예수님과 우리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실 때에 우리도 함께 죽는 것이지요.

그 때에 우리의 죄도 함께 죽는 것입니다. 죄가 죽는 그 순간에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빛이 우리 안에 비춰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한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이것을 믿고 사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양 팔을 넓게 벌리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양팔을 벌림은 누구든지 오라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는 그 품에 안기라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숙인 것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비록 자신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보지 않고 맞아주신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속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과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화목의 십자가입니다.

더욱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총 게시물 282건, 최근 0 건
제목
[4] 기럇여아림 사람들 (삼상 6:19-7:4)      1. 사무엘상 네번째 설교입니다. 오늘은 <기럇여아림 사람들>을 설교하려 합니다.<기럇여아림>이란 “숲속의 성읍” 이란 뜻입니다. …
[3] 언약궤 교훈 (삼삼 5:1-7)1. <견물생심>이라고,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요. 누구나 좋게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까지 있는 것이지요.눈에 …
[1] 한나의 믿음 (삼상 1:12-18, 2:30)1. 제가 우리 교회에 9년 전에 부임해서 처음 시작한 성경공부가 사무엘서입니다. (1) 첫째는 사무엘서에는 저의 마음을 끄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15-17)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기본적으로 사람은 먹어야 살고, 돈이 있어야 살고, 숨을 쉬어야 삽니다. 또 자기 자신을 알아야 삽니다. 치매와 같은 병을 …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16:1-4)     1. 요즘처럼 무더위가 계속될 때는 하늘로부터 시원한 소낙비라도 쏟아졌으면 하지요. 요즘처럼 믿음생활이 어려울 때는 하늘로부터 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역대하 14: 2-5, 8-12)1.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인간이라는 말은 사람 人자와 사이 間자로 ‘사람 사이’를 말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사는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시23:1-6)1. 디테일한 것,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덤벙덤벙 살 수 있다. 자동차를 고칠 때 꼼꼼하게 고쳐야, 대충 고치면 큰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믿음도 구…
착하고 충성된 종 (마태복음 25:14-22)1. 어떤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 하나도 해 보지 못하고 살았다.”가족과 가정을 위해 살았을 겁니다. 직장과 사회를 위해 살았을 겁니다. 그렇…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 (누가복음 24:44-49)1.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주님께서 왜 부활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엇을 제일 …
부활은 생명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19)     1. 부활은 우리를 살게하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인생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할 때는 2가지를 생각하…
십자가의 도(3) - 감동(사랑)의 십자가 (마가복음 15:21, 빌립보서 2:5-11)   1. 승리의 십자가, 속죄의 십자가, 화목의 십자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로 감동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
십자가의 도 (2) -속죄(화목)의 십자가 (마가복음 10:45, 로마서 3:21-26) 1. 십자가의 도에 관한 두번째 설교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탄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십자가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
십자가의 도(1) – 승리의 십자가 (고린도전서 1:18, 로마서8:31-37)1.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이라 하였습니다.“십자가의 도”란,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말…
내가 깊은 곳에서 (시편 130:1-8) 1. 시편 130편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부르는 찬송입니다. 처음에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깊은 곳”은 어디를 말하…
입에 감람나무 잎을 물고/창세기 6:6-12 1. 한국을 다녀온 저에게 미세먼지가 어떠하냐고 물어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하나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요, 또 하나는 미국에 사는 …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7140 S. Colorado Blvd. Centennial, CO 80122 TEL:720-529-5757
Copyright(c) 2012 Denver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