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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2-09 (토) 21:18 조회 : 132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1-5)

1. 우리는 성경 속에 답이 있고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 속에서 답을 찾고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이나 글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 마음도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신을 갖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믿습니다.

2. 저는 한 때 제 자신을 스스로 판단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리 약할까? 나는 왜 이리 믿음이 부족할까? 나는 왜 이리 참지 못하고 힘들면 그만 두려고만 하는 것일까?”하면서 자신을 판단하였습니다.
자책을 하는 것은 마치 상처의 딱지를 건드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딱지가 앉으면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손으로 깔그적거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성경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 성경 말씀을 읽고 자책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3절에 보면, 바울 사도께서 “나도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울을 판단하였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을 받으면서 바울도 괴로운 나머지 자신을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판단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판단하는 것이 잘못인 것을 깨닫고, 자신을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답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3.  오늘 성경 말씀은 4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4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내린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언하신 것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본인의 믿음이 아니고 친구들의 믿음이었습니다. 

4. 예수님은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1) 작은 자라고 부른 것이 색다릅니다. 왜 작은 자라고 불렀을까요? 키가 작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중풍병자이기에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스스로 활동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인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자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처지를 잘 이해하여 “작은 자”라고 부르신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2)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죄가 용서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더 이상 죄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본인은 자신이 중풍병자인 것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근거로 그런 선언을 하시는 것일까요? 본인의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딸의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을 때에,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이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하였을 때도,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면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는 전혀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렇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친구들의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친구들은 중풍병자 친구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를 돕고자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내려놓을 수가 없자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 친구를 조심스럽게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이들의 친구관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어려움을 도와주었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고자 하였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중풍병자인 친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죄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친구들은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남들이 그렇게 말을 할 때에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친구 관계는 서로 죄를 씻어주는 것이지요. 죄로 아파할 때 위로하지요. 잘못을 하였을 때는 용기와 희망을 주시요.
그렇기에 친구 관계에는 죄보다 사랑이 더 큽니다. 잘못도 있겠지만, 희망과 용기가 더 강합니다. 그렇기에 좋은 친구관계는 죄를 이기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친구관계를 보시고, 그에게 죄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끼리 이미 죄를 덮고 지워버리고 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한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옵시고”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죄를 이기는 강력한 믿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우리가 죄를 이기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 방법이 있다면,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보다 은혜와 사랑이 더 큰 것이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이기고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사랑하면서 은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구들의 이러한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동무를 불쌍히 여기는 친구들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친구관계는 이미 죄를 이기고 사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7. 오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있고요, 중풍병자가 있고요, 네 명의 친구들이 있고요, 그리고 예수님께 다가서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동네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 중의 한 명일까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터이고요? 또 자신을 중풍병자와 같다고 생각하는 분은요? 
아니면 네 명의 친구 중의 한사람, 아니면 동네 사람들 중의 하나인가요? 
(1) 중풍병자나 네 명의 친구들 중의 한사람으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많았던 사람들은 숫자는 많았지만, 어떤 답도, 어떤 길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중풍병자와 네 명의 친구들처럼, “작은 자야,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그 기쁨과 만족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어떤 일이 벌러지고 있는지 구경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율법학자들이 논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누가 이기는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2) 답을 얻고 길을 찾은 사람은 4명의 친구와 중풍병자입니다. 
네 명의 친구들은 동네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중풍병자를 도왔던 것이 잘한 것임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서로 협력하는 친구관계가 예수님에게서조차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친구간의 사랑이 친구의 죄를 용서하는 일에 도움이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중풍병자도 친구들이 자신에게 “네가 중풍병자가 된 것이 네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고 한 말이 그냥 불쌍해서 한 말이 아닌 것이 입증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성경의 말씀이 증명이 된 셈입니다.

8. 네 명의 친구들이 궁금합니다. 저도 네 명의 친구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모두 네 명의 친구들 중의 한 사람과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네 명의 친구를 만드시는 한 해이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내 자신도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야 하겠지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가 꼭 필요합니다.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 친구를 내려 보낼 때를 생각해 보세요. 서로 밸런스를 맞추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이 하였다면 힘이 들어서 엄두가 났겠습니까? 세 사람이라면 들 것을 들 때에 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지구에 동서남북이 있잖아요. 일년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잖아요. 혈액형도 A, B, O, AB형이 있잖아요. 
사람의 체질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 있잖아요. 노래도 소프라노, 엘토, 테너, 베이스가 있잖아요.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지요.

9. 고향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중에서 친구를 삼는 것이 정말 필요한 친구입니다. 급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이웃 사촌이라 하지 않습니까?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자식들도 자기들 살기에 바쁜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전화할 수 있고, 전화하면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친구입니다. 
내가 먼저 죽었을 때에 남아서 뒷정리를 해 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현실적인 것입니다. 올해는 이 일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친구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사는 가운데 죄도 덜 짓고 죄를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10. 어떤 사람이 내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헨리나우웬>은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같은 상처를 가져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먼저 잃어본 사람이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극심했던 사람이 외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지요. 
먼저 내 자신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주변에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리고는 “나는 이것 때문에 힘이 드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결하면서 사느냐?” 하면서 다가서는 것입니다.
요즘은 Net Working의 시대입니다. 카톡도 있고, 페이스 북도 있고, 손마다 전화기가 있습니다. 
그냥 떠도는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마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도 잘 지내..” “오늘도 무사히..” “또 연락해..” “밥 먹었어?” 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11. 저는 제가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것에 심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요. 제가 전에 있던 교회에서 교인들과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교인들의 모든 사정을 다 꿰뚫고 있었습니다. 
아픈 곳을 알았고,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교회를 떠나게 되니, 모두 실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가 교인들의 친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같은 교인들끼리 친구가 되는 것이 가장 강한 친구관계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서로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용서가 있습니다. 거기에 사랑이 있습니다. 거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거기에 죄가 물러가고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 친구가 되어 협력하는 마음으로 주변의 아프고 외롭고 힘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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