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276건, 최근 0 건
   
성품을 쌓는 믿음 (벧후1:4-10)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1-14 (월) 08:34 조회 : 102
성품을 쌓는 믿음 (벧후1:4-10)

1. 누구나 존경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존경하는 분이라고 하면, 분명히 그분의 성품을 존경할 것입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성품이 좋으신 분을 만났습니다. 중국 고전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송강>이라는 분입니다.
그의 호는 <급시우>라고 합니다. “때를 맞추어 내리는 비”라는 뜻입니다. 그의 어진 성품을 잘 말해줍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만나면 잘 도와주는 분입니다.
108명의 영웅호걸들이 사는 양산박이라는 요새에 최고의 지도자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송강을 최고의 두령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반대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무술이 뛰어난 자도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재력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가도 공부를 많이 한 지략가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골에서 관리 노릇을 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품이 아주 좋았던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이 소설을 읽고, 나도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2. “성품이 좋다” 는 말은 그 사람의 내면적인 성격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성격이 좋은 사람이 남에게 따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좋아도 남에게 따뜻하지 않으면 존경받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품이 좋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저의 성격이 좋아지는 것에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전히 저의 이기적인 욕망이 앞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품이 좋아지는 것이 개인적인 성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넉넉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백로의 깨끗함을 지키는 것이 성품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한 성품을 가졌다 할지라도다른 사람에게 냉냉하고 따뜻하지 않다면 누가 그를 따르겠습니까?
3. 얼마 전에 한국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일어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지금껏 두려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나도 당했다” 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충남 도지사를 하던 안모라는 분이 비서를 성폭행하므로 도지사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지금 재판 중에 있습니다.
검사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높다는 부장검사가, 어떤 여자 검사를 성추행함으로 조사를 받고 있고, 그의 창창한 앞 날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최근에는 조모라는 쇼트트랙 코치가 심모라는 선수를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성폭행을 하였다는 것으로 시끄럽지요. 자기를 국가대표선수로 키워주었으니 얼마나 좋은 분이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이용하여 수시로 성폭생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그 속에 늑대가 있었던 것이지요. 겉으로는 감독이고 코치이지만 그 속에는 악마가 숨어 있었던 것이지요.

4.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모두가 높은 자리에 앉은 분들이지 않습니까? 공부도 많이 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또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을 대로 썩은 것이지요. 지금껏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한 것들이 성품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성공 출세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겠다는 욕망일 뿐이지, 자신의 인격을 높이고, 성품을 쌓고, 덕성을 가꾸는 것하고는 무관하였던 것입니다. 속이 병들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이민 목회를 하던 앨라배머에서, 해군 장군으로 퇴역하신 장로님 한 분을 한인회 모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미국은 나무만 팔아도 수십년은 거뜬할 것이라고 제가 말을 하였지요. 그랬더니 “아무리 자원이 풍부해도 정신이 썩으면 한 순간에 무너지지요” 라고 하더군요.
믿음생활은 속사람을 든든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후 4장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속사람이란 예수 믿고 변화된 성품을 말합니다. 거듭난 사람을 말하지요. 

5.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으뜸제자가 할 수 있는 베드로 사도의 이름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1) 4절에,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성한 성품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품을 간직하고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긍휼과 사랑이고, 정의와 평화와 같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본성이 담아짐으로 우리의 성품이 좋아지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성품이 좋아지는 방법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 5절에, “그러므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0절에, “너희가 이것을 행하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실족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믿음이 공허하지 않고, 확신 속에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보다 영어 성경을 보면 그 뜻이 더 선명함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에 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은 덕이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덕이 있는 믿음이어야 살아있는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성경에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말하면서 나중에 사랑을 더하라고 함으로 사랑이 최종적인 목적인 것으로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원래의 뜻은 덕이 있는 믿음이어야 하고, 지식이 있는 덕이어야 하고, 사랑이 있는 형제우애이어야 함을 말하면서 모든 것의 뿌리가 믿음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꽃보다는 믿음의 뿌리가 더 중요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없으면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덕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덕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 있는 믿음이면 사랑의 꽃을 저절로 피게 됨을 말합니다. 

6. 덕이란 말은 후덕한 것을 말하고, 덕망스러운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덕은 우리에게 있는 덕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덕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 덕을 세우려고 하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서 덕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덕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덕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덕은 예수님께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고, 그를 용서하며 사랑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그 좋은 성품을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란 예수님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믿음이란 예수님의 성품을 우리 속에 쌓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성품을 쌓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베드로는 성격에 문제가 많은 자였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조차도 그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신성한 성품을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마음에 예수님의 성품이 담겨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7. 여러분도 세상이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실 겁니다.
이제는 컴퓨터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서 사람보다 더 똑똑하게 사용을 합니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과 바둑을 두어서 3번지고 1 번 이겼을 뿐입니다. 대백과사전에 있는 모든 정보가 손가락만한 USB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다 외우지 못해도 컴퓨터는 다 외웁니다.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소중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아이들이 이 컴퓨터하고만 노는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 없고 컴퓨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이 사람취급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살다가 싫으면 죽겠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살아야 하겠으면 상대방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머리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폭탄을 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8. <유발 하라리>라는 작가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의 제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4개월을 차지하였다고 뉴욕타임즈가 보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현대 젊은이들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구원, 믿음, 은혜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 머리 속에는 컴퓨터에서 제공하는 것만이 있기에,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을 설명하고 믿음을 말하겠습니까?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들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예배당에 다니는 것을 취미생활 정도로 여길 것입니다.

9. 그래도 우리는 전도하고 싶지 않습니까? 어찌 하든지 우리 자식들 만큼은 하나님을 부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조차도 포기하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찌할까요? 어찌합니까?
그런데 그들과 우리 사이에 공통분모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식, 자손들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한가닥의 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함>이라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차가운 컴퓨터를 손에 들고 살기에 따뜻함을 그리워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점점 기계 문명에 빠져 있기에, 점점 그들의 영혼이 어두워지는 것이지요. 인간이기에 가끔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물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 때는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그립지요. 인생의 내면을 채워줄 손길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의 성품들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싸주고, 어루만져주고픈 성령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끊임없이, 이것이 자손들에게 남겨줄 유산이라고 믿고, 채근하지 않고, 신앙이 없다고 나무라지 않고, 끝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10. 저는 미국에서 장례식을 참석할 때마다 늘 보는 광경이 있습니다.
고인 앞에서 자식들은 고인의 따뜻함을 말하지 않아도, 손자/손녀들은 고인의 따뜻함을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셨어요, 할머니가 따뜻한 떡꾹을 끓어주셨어요. 보고 싶어요 할아버지/할머니, 다시 만나요”라고 하지요.
우리가 그 틈새에 끼어드는 것입니다. 따뜻한 성품으로 그들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들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모든 영혼은 따뜻한 품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그들이 그 따뜻함을 느낄 것입니다.

11. 김승조 전도사님이 제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금새 지나갑니다. 3-4년 금방이에요”
60마일, 70마일, 80마일로 달려간다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운전이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더 빨리 달려가고, 운전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어찌할까요?
나를 붙들어줄 예수님을 모시고, 성품을 쌓는 믿음으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려 합니다. 
내가 머물렀던 자리가 따뜻하여,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기를 바랄뿐이지요.
무엇을 이루러하기보다는, 무엇을 잡으러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더 잘하려 하기보다는 먼저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따뜻함이 깃들기를 축복합니다. 
그 따뜻함이 얼마나 세상의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다고 그 엄청난 기술 문명이 얼마나 세상을 새롭게 발전하였는가요? 점점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지 않는가요?
결국 인생은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곳을 찾게 마련입니다.
따뜻한 성품을 쌓는 믿음, 예수님의 덕이 있는 믿음이기를 축복합니다.  한주간 <따뜻한 믿음>이라는 말을 입에 담고 지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총 게시물 276건, 최근 0 건
제목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시23:1-6)1. 디테일한 것, 구체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덤벙덤벙 살 수 있다. 자동차를 고칠 때 꼼꼼하게 고쳐야, 대충 고치면 큰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믿음도 구…
착하고 충성된 종 (마태복음 25:14-22)1. 어떤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 하나도 해 보지 못하고 살았다.”가족과 가정을 위해 살았을 겁니다. 직장과 사회를 위해 살았을 겁니다. 그렇…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 (누가복음 24:44-49)1.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주님께서 왜 부활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무엇을 제일 …
부활은 생명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19)     1. 부활은 우리를 살게하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인생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할 때는 2가지를 생각하…
십자가의 도(3) - 감동(사랑)의 십자가 (마가복음 15:21, 빌립보서 2:5-11)   1. 승리의 십자가, 속죄의 십자가, 화목의 십자가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세번째로 감동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
십자가의 도 (2) -속죄(화목)의 십자가 (마가복음 10:45, 로마서 3:21-26) 1. 십자가의 도에 관한 두번째 설교입니다. 지난 주일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탄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십자가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
십자가의 도(1) – 승리의 십자가 (고린도전서 1:18, 로마서8:31-37)1.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이라 하였습니다.“십자가의 도”란,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뜻을 말…
내가 깊은 곳에서 (시편 130:1-8) 1. 시편 130편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부르는 찬송입니다. 처음에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깊은 곳”은 어디를 말하…
입에 감람나무 잎을 물고/창세기 6:6-12 1. 한국을 다녀온 저에게 미세먼지가 어떠하냐고 물어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하나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요, 또 하나는 미국에 사는 …
뜻을 정하고 사는 사람들 (다니엘 1 : 8-15)1, 저는 37살에 당뇨가 왔습니다. 26 년간 약을 먹었습니다. 이제는 약도 잘 듣지 않습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할 형편인데, 겨우 운동을 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1-5)1. 우리는 성경 속에 답이 있고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 속에서 답을 찾고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이나 글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 사람의 말 (마태복음 5:37, 요한복음 8:3-9, 야고보 3:8-10)1.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기에 높임말로 말씀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그냥 말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말도 어른이 하는 말…
성품을 쌓는 믿음 (벧후1:4-10)1. 누구나 존경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존경하는 분이라고 하면, 분명히 그분의 성품을 존경할 것입니다.저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성품이 좋으신 분을 만났습니다. 중국 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편 1:1-6, 요한복음 14:9-10)1. 지난 해에 떠올랐던 그 해인데, 2019년도 새해라 하니, 말도 안된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해 일지라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
마음으로 믿어 (마가복음 6:46-52, 로마서 10:10)1. 마음으로 믿으려고 꽤 노력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의 문제점을 발견하였습니다.마음으로 믿고자 …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7140 S. Colorado Blvd. Centennial, CO 80122 TEL:720-529-5757
Copyright(c) 2012 Denver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