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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와 겸손이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12-17 (월) 03:05 조회 : 431
온유와 겸손이란? (마태복음 11:28-30)

1. 제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앨라배머 주에서 처음 이민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회도 거의 없었습니다. 6년을 정말 외롭게 살았습니다. 4년을 살았을 때에 버밍햄에서 북쪽으로 3시간 가량 떨어진 내쉬빌에서 한국 목사님들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4년 만에 처음으로 주변의 목사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지내고 저녁 시간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전상의 목사님이란 분이 멀리서 온 저희 내외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의 그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의 그 따뜻함은 정말 성령의 위로와 숨결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따뜻함이 온유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2.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배워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화도 있고 악도 있을 뿐 아니라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유와 겸손이 있음으로 우리가 평안합니다. 삶의 쉼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와 우리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내 속에 들어와 내 마음에 머무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이 우리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올 수 있을까요?

3.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오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여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께서 외양간 구유에 나셨다고 하였습니다. 외양간의 빈자리를 통해서라도 태어나셔야만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장공비가 침투하였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침투한다는 말을 잘 압니다. 몰래 들어와서 그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침투하여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남자의 정자가 여자의 난자 속으로 침투하므로 하나의 생명이 잉태되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세계 속으로 침투하신 것이 예수님의 태어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으로 어떤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가요? 
첫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있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요, 사랑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평화와 사랑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인생이 사랑받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모두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였고, 대접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5. 최초의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성탄절은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으로 침투하는 것은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이 들어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첫째는 그래야 우리 마음이 쉼울 얻습니다. 
쉼은 다른 말로 안식과 평안입니다. 쉼이 있어야 인생이 한숨을 내쉬며 자기 인생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쉼이 없는 인생은 평생 고생만 하다 끝나는 인생일 뿐입니다.
(2) 둘째로 쉼이 없는 이유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짐은 욕망의 짐이고, 성공과 출세의 짐이고, 물질과 자랑의 짐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우리의 욕심인 것이지요..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버리고자 할수록 우리의 손에는 더욱 힘이 가해집니다. 
나이가 들면 욕심이 덜할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고집까지 생겨서 더 지독해집니다. 온유함과 겸손함이 우리 마음을 다스릴 때만이 인생이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온유함과 겸손함이 들어오는 것은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예수님의 고유한 마음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초조하고 불안하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채워지지 아니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간은 마치 깨진 항아리와 같아서 채워도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오래하여도 마음의 평안이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온유와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이 머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유와 겸손만이 우리 인생을 안식하며 쉬게 하는 것입니다. 

6.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축하함으로 예수님이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파고 들어오셔야 우리 마음에 온유와 겸손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배우라는 말에는 2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배우라”는 말은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꼭 이루어지도록 목이 타도록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구하고 찾는 것이지요.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듯이 이토록 갈망하는 마음으로 온유와 겸손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니까요.
또 배운다는 뜻은 훈련하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안되기에 이것이 반드시 내게도 이루어지도록 매일같이 훈련하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훈련하고 반복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내 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테니스를 오래 하였습니다. 이제는 운동 중에 테니스가 제일 재미있어요. 누가 골프를 권해도 테니스가 더 좋기에 골프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덜합니다. 
테니스가 좋아지기까지는 30년 가까이 운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몸에 배었지요. 내 것인 거죠.

7. 그러면 이제 온유와 겸손이 우리 속으로 파고드는 법을 배워보겠습니다. 
우선 온유함과 겸손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온유함은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온유한 마음은 상대방에게 친절한 따뜻한 마음입니다. 온유함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하겠지요. 
하나는 상대방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따뜻한 마음이지요.
먼저 상대방을 향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이면 온유한 마음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향하여 열린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입니다. 
예수님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좋은 마음이면 이미 친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따뜻한 것이지요.
예수님의 마음이 따뜻한 것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자신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것을 느끼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어루만지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생활이 오래되면서 온유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처럼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게 온유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8. 겸손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기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인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길 수 있을까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날마다 내 앞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믿을 때에 함부로 말할 지 않게 되지요. 항상 삼가며 살지요.
겸손은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세인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에 우리가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당신 속에 있다고 늘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 마음이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온유가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이라면, 겸손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온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라면 겸손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진실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온유함으로 상대방에게 친절한 것입니다. 내가 겸손함으로 하나님앞에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9. 다음주일이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함이 내 속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그림을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는 햇볕처럼 하나님의 따뜻한 모습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어느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겨울날, 한 나그네가 두터운 외투를 입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바람이 심한지 두 손으로 외투자락을 움켜 쥘 정도였습니다. 
그 때에 햇님과 바람이 서로 내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누가 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겠느냐의 내기였습니다. 
바람은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먼저 강한 강풍을 불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이 외투 속으로 들어가면서 외투가 벗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옷이 벗겨지는 막고자 더 강하게 외투를 움켜 쥐었습니다. 
결국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은 햇님차례였습니다. 햇님은 따뜻한 햇볕을 은은하게 내리 쬐기 시작하였습니다. 나그네는 날씨가 변덕이라면서 단추를 하나씩 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모든 단추를 풀었습니다. 
겨드랑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나그네는 외투를 벗어서 어깨에 매었습니다. 결국 따뜻함이 강한 바람을 이겼습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이 이 성탄절에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0. (2) 또 하나의 그림은 벼이삭이 고개숙인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겸허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고개 숙인 내 자신의 모습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것이 바로 내 자신이 겸손한 것입니다. 
겸손함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나를 이기기를 바랍니까? 사람이 나를 이기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기실 때만이 안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신다 하여 나를 죄인 취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심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지 않고 사탄이 이기면 인생에게 어둠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기에 우리가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면 교만해 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겸손해지면,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의 승리이지요. 
꼭 하나님께서 이기심으로 인하여 겸손함으로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성탄절에 꼭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오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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