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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혼으로 살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8-28 (화) 00:01 조회 : 109
그의 영혼으로 살기 (마가복음 16:9-11, 요한복음 3:3-7)

1. 우리의 영혼 속에는 과거의 경험들이 가득 들어와 있습니다. 내 영혼 속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어려서 “어린 것이 참견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수치심이 내 영혼에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이면 자신감은 없고 부끄러움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에게 혼나면서 자라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도 못하느냐?” “왜 그 모양이냐?” “누구처럼 못하느냐” 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라다보니 먼저 눈치부터 보게 됩니다. 
내 인생을 내 영혼으로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와서 나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잘못된 영향을 받으면 잘못 살게 마련입니다.

2. 제 영혼에 어떤 것들이 들어와 있는 지 생각해 봅니다.
가장 큰 영향은 시골에서 자란 것입니다. 산으로 시내로 뛰어 다니면서 자랐습니다. 숨바꼭질을 할 때이면 어느 집이든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이것이 못마땅한 어른들은 앞 산에 가서 놀라고 하였습니다. 산에서 시냇가에서 놀던 일들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 다음에 영향을 받은 것은 저희 가정입니다. 엄하신 아버지의 생각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항상 말없이 순종하시는 제 어머니 모습입니다. 그리고 맏아들만 최고로 여기는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면에서 반항적이었습니다.
여태껏 없어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적 생각이 자주납니다. 그래서 어려서의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지난 날의 영향에 얽매이지 말고, 내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영혼의 무게는 천하 만민이 똑 같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이 세상에 영향을 받아서 색깔을 가지게 됩니다. 
보수적인 색깔을 갖기도 하고, 진보적인 색깔을 갖기도 합니다. 어두운 색깔을 좋아하기고 하고, 밝은 색깔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내 색깔과 다르면 다른 색깔을 가진 것인데, 우리는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이라 편견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공부를 하면서 색칠을 합니다. 1등을 해야 하기에 상대방을 경쟁자로 여기는 영혼의 소유자가 됩니다. 자신의 재능이 어떤 색깔인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1등을 하고 성공을 하는 것이 좋은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색깔을 알아보지도 않고, 세상에 의해 칠되어진 색깔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장성한다는 것은 자기의 색깔을 찾는 것이지요, 자신의 영혼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지요. 더 이상 남들이 칠한 색깔대로 살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재능을 찾아서 자신이 즐거워하는 인생을 살고자 하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영혼의 색깔이 어둡기에 하늘의 밝은 빛이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에 짓눌려 있기에 진리로 자유함을 얻으려 하지요.
그래서 내 영혼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영혼이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혼으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4. 저는 주관이 강한 편입니다. 특히 아내가 제 일에 간섭을 하면, 왜 내가 결정한 것을 당신이 바꾸려 하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살면서 종종 아내의 영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내 생각보다 아내의 생각이 옳을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아내의 영혼이 내 속에 들어오면 제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내의 영혼을 밀어내면, 제 마음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가끔은 저하고 살아준 것이 고마워서 밉든 곱든 아내의 영혼을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인 것을 압니다. 사랑을 통해 서로의 영혼을 존중히 여기고, 서로의 영혼을 품고 살지요.
사랑은 영혼의 빨대입니다. 나비가 빨대를 통하여 꿀을 빨아 들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랑을 통하여 영혼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예수님의 영혼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 예수님의 사랑 속에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깃들었던 것이지요. 

5. 니고데모라는 분이 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말은 남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겠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이지요.
또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회의원과 같은 자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였고, 세상적인 지위와 권세가 있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 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네 속에 다른 영혼이 들어가서 새롭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이 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것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태어난다고 하면 육신적으로 태어나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물은 씻는 것이고,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입니다. 잘못된 것을 씻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도 있고, 영으로 태어나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은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영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혼 속에 들어와서 새롭게 사는 것을 말하지요.
니고데모에게 세상적인 기준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6. 믿음이란 내 영혼에 예수님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있음으로 육신의 욕망을 거부할 수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영이 내 속에 들어와 살기에 예수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의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무서워하는 영이 들어오면 종처럼 벌벌 떨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영이 들어오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나쁜 영향에 의하여 살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아들의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느끼면서 살 것입니다.
아들의 영이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을 사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영혼으로 살아가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7.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경험한 여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일곱 귀신 들린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새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그것이 고마운지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 한 병을 쏟아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이겠습니까? 
모르긴해도 여인의 영혼은 예수님의 은혜로 세탁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온갖 안 좋았던, 더럽고 추했던 그의 영혼에 예수님의 사랑의 영이 들어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였으니, 세상을 향한 원망이 어떠하였겠습니까? 가족들조차도 외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안 좋은 영혼에 사랑의 영혼이 들어온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생각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생각만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의 과거의 영혼은 떠나가고 그의 영혼 속에 예수님의 영혼이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비싼 향유 한 병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 주었던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8.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무덤에 갇힌 것입니다.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가요? 죽었다고 하여 그 사람에 대한 마음조차도 싹 지워지는 것인가요?  누가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빼앗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죽으셨기에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강했을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더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예수님의 영혼이 자신 속에서 더 강하게 불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아직 어둠이 짙은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으니 막달라 마리아는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누가 훔쳐간 것일까? 로마 군인들이 시체를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는데도 제자들은 어찌 저렇게 무서워 떨기만 하는 것일까?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가득한 여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만나주셨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마음의 것이 보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 눈에는 어디를 가든 예배당이 보입니다. 제 마음에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 사위가 중국 아이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중국놈이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면 얼굴에 그늘이 진 것도 보입니다. 그런데 못마땅한 마음이 있으면, 근심을 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찾으셨습니다. 달리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만을 생각하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진 것입니다. 

9. 오늘 마가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서도 믿지 아니하였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영혼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까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을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복잡하였습니다.
자신들도 잡혀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뭔가 큰 일을 이루어보지도 못하고 죽으신 예수님이 야속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를 할 때에 의심부터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고기나 잡아야 하겠다고 고향을 내려갔습니다. 제자들의 영혼은 자기들의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의 영혼 속에는 예수님의 영이 자리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들의 생각으로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도 그 말이 귀에 담기지 않았던 것이지요.

10.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영혼에 예수님의 영혼을 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자신의 과거의 영혼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그 속에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혼이 부활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영혼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을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은 육신이고 영혼은 영혼이라는 것이지요. 육신은 육신의 것을 보지만 영혼은 영혼을 보는 것입니다. 
내 영혼에 예수님의 영혼을 담고 예수님의 영혼으로 살면, 내 영혼이 예수님을 느끼고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11.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내 속에 들어와 머무는 것이지요. 그의 영혼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의 영혼을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사랑은 영혼의 빨대입니다. 사랑을 통하여 상대방의 영혼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지요. 그 영혼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의 영혼이 내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세상 사람들도 “내 속에 너 있다”는 말이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영혼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영이 우리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말세가 가까올수록 우리의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영혼을 느끼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의 영혼이 내 속에 들어오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주간도 예수님 사랑하면서 예수님의 영혼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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