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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계신 하나님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8-21 (화) 04:26 조회 : 84
깨달음에 계신 하나님 (마태복음 13:8-9, 13, 23, 요한복음 14:8-11)

1.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깨달아야 할 것을 말씁하십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깨달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 수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므로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에게 둔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깨닫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하기에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말씀을 따라 살게 마련이고, 말씀으로 살면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땅에 씨앗이 뿌려진 것을 가리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살 때에 100, 60, 3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깨달음을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 어떤 분은 천국까지의 거리가 30Cm라고 하였습니다. 머리로 믿는 것이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30Cm인 것을  말하지요.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말씀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말과 믿어진다는 말의 차이와도 같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면 내가 믿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어지는 것은 어떤 다른 힘에 의하여 끌려가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마음이 끌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믿어지는 것은 뭔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통했다는 말도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깨달아야 그 깨달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참이신 분” 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참되게 하시는 분”으로 마음에 와닿는 것입니다.
죄인이기에 죄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을 믿기에 자꾸 참되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참되게 살고자 하기에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살기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참된 인생을 회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참되게 사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겠지요.
말씀을 통하여 “아하”하며 깨달음이 오는 것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새롭게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깨우치심인 것입니다.
4. 빌립이라는 제자가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세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세요?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악인은 벌하지 않고 선인이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게 내버려 두시는가요?”
모두에게 하나님에 대한 궁금함이 있지요.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내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한 마디로,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깨달음을 통해 먼저 하나님에게 눈이 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눈에 뜨여야 하나님의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이니 우리 안에 계시지요.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니 우리 안에서 사랑으로 일을 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한 부분이지요.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이지요.
5.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좀 생소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시고, 강하도 위대하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크신 하나님이 작은 인간의 마음에 들어 오신단 말인가요? 이것은 마치 자동차에 비행기를 담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어찌 사람 속에 계신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보다 힘이 세고, 강하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 사람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 속에 계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우리로 하나님을 바르게 믿도록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6. 예수님께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르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겉으로만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말씀도 많이 알고 신앙의 경륜도 많지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즉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는 것이지요.
깨달음이 없는것입니다. 깨달으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렇게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7.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빠져 죽게 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에서 이김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다윗 왕과 같은 지도자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더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질의 신인 바알을 몰래 섬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왕들도 하나님보다 강대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였습니다. 
아합왕과 같은 자는 이세벨 왕비와 함께 국가의 신을 하나님에게서 바알로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선지자 엘리야가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한 강하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안 보이시는 것입니다. 
욥기에서는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아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라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8.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게 망하여 거의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왕자들까지 잡혀갔고, 심지어 잡아 갈 때에 왕의 두 눈을 빼기까지 하였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요? 언약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건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요?
저는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서 그 가슴아파하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마치 세월호 사건 때에, 애들이 배 안에서 점점 침몰해 가고 있을 때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부르짖던 부모님들의 기도와 같았을 것입니다. 배 안에서 손가락 끝이 문지러지도록 살려 달라고 외쳤던 아이들의 모습과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했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건가요?
9. 전쟁을 겪어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포로생활을 해보신 분이 계신가요?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 해 보신 분이 계신가요?
얼마나 적을 미워하고, 힘으로 갑질하는 놈들이 미웠겠습니까? 또 얼마나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부모를 원망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 것이 맞느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느냐는 것이지요. 좀 잘못하였다고 하여 이렇게 무참하게 벌을주시는 하나님을 계속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무서워서 어떻게 믿겠느냐는 것이지요.
포로생활은 1-2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0년이 넘었습니다. 20년,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포로생활이 계속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다치고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겼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깨닫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건성으로 믿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이전에 느끼지 못하였던 하나님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영혼을 일깨워주시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옷을 찢지 말고 가슴을 찢으라는 말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전지전능하신 분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깨닫고 회개하는 자의 심령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믿음을 신실하게 하고 삶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10. 그런 깨달음을 가지면서 그들은 하나님에 관한 지혜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지혜문학이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흩어져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모으게 되었고, 새롭게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한 권의 책으로 모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신앙이 회복되고, 하나님을 진정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하였던 것이 바로 깨달음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아는 신앙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느낌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11. 저는 제 삶이 간증입니다. 저는 제 뜻대로 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큰 교회 목사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공한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큰 학자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과 씨름을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내 목적을 이루어주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내가 성공을 하면 하나님의 이름도 높이고, 집안의 영광이기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저를 겨우 이 정도로 끝마치게 하시렵니까?
포기도 많이 했습니다. 버리기도 많이 했습니다. 성질도 많이 죽였습니다. 좋은 것도 많이 버렸습니다. 어떨 때는 밑바닥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 계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나를 나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심을 느끼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면, 좋으면 꼭 붙잡고 기분이 나쁘면 내려놓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12.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참이라고 소개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고 하였습니다. 또 참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참 포도나무라고 하였습니다.
그 참이 무엇일까 오래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냥 참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참된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탈무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깨달은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하고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검정이 묻었고, 한 사람의 얼굴은 깨끗하였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두 사람 중이 누가 얼굴을 먼저 씻겠느냐고요?
대답은 얼굴에 검정이 묻지 아니한 자가 먼저 씻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보면서 자기 얼굴에 검정이 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지요.
지혜는 상대방을 보면서 자신도 그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사는 것이지요. 이렇게지혜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럴 수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회개하면서 사는 모습인 것입니다.
깨달음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산다는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는 만큼 내 삶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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