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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새 교훈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8-13 (월) 05:12 조회 : 40
권위 있는 새 교훈 (마가복음 1:21-28)

1. 오늘 성경말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권위 있는 새 교훈” 이라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에서 권위를 느꼈습니다. 가르침에 권위가 있을 때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또 순종할 때에 그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의 교훈에 권위를 느끼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지요?

2. 미국에서 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다니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몸에 문신을 심하게 새긴 모습입니다.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사는 문화를 힙합 문화라고 말합니다. 힙합 문화의 사상은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함에 있습니다. 규격대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허리띠를 하고, 바지를 허리까지 올려서 단정하게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편한 대로 입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엉덩이에 걸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는 것입니다.
문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9:28절에 “너희의 살에 문신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문신을 하는 것은 내 몸이기에 내 맘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나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문신을 하고 싶으면,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주의 사상입니다. 

3. 이러한 사상들은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기독교국가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공공장소에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Merry Christmas라고 하면 안됩니다. Happy Holiday라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기독교만을 말하면 신고를 당하게 됩니다.
미국의 헌법은 동성애를 합법화하였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을 해도, 미국 법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미국이 법으로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누구도 남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모든 법과 기준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기를 허용하는 것도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총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국가보다 개인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국가가 나를 위하여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개인주의, 이기주의라고 합니다.

4. 그러면 각자 자기 좋은 대로 살면 되는 것인가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내가 싫으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우리 말에 “평양감사도 나 싫으면 그만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도 여전히 내가 우선이라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학창시절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내 인생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5. 이런 경우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기록한 말씀이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4명의 제자를 부르신 후에 제일 먼저 행하신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이란 지역마다 있는 집회처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예루살렘 한 곳만 있고, 지역마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 그곳에서 회당을 짓고 그곳에서 율법 말씀을 가르치고 배웠던 것이지요. 그것이 나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회당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이민생활을 하면서 몇 몇이 모이기만 하면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을 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많이 놀랐습니다. 
본문의 말씀에는 반복되는 3개의 용어가 있습니다. “놀랐다”, “권위 있다”, 그리고 “교훈”이라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권위 있다”고 하였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에 많이 놀라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을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니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 7장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무리들이 놀랐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7. 마침 그 자리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귀신들린 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빠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권위 있는 새로운 교훈입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하니 순종을 합니다.”

8.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회당에 들어온 것일까요? 어떻게 회당장이나 서기관들이 그런 자가 회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을까요?
그것은 귀신들린 자가 큰소리로 자기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데 공동번역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에 왜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귀신들린 자와 한 통속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지요. 

9. 이러한 것을 볼 때에, 당시 회당에는 잡다한 사상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습니다. 
회당장이나 서기관들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면 더러운 귀신 들린 자일지라도 허락을 하였던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더러운 악령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즉 더럽고 악한 생각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개인에게 득이 되고, 이익이 된다면, 서로 힘을 합치는 모양이지요. 귀신들린 자는 당시에 권세가 있는 서기관을 이용하는 것이고, 서기관은 전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는 귀신들린 자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잘못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을 위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해석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에 예수님께서 새롭게 가르치시니 목소리가 큰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왜 우리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하는 것입니까?”하면서 대드는 것이었습니다.

10.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들에게 2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는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간섭 받지 않으려 하는 모습입니다.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것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섭이 없이,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좋은 대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누구와도 상관 없이, 어떤 배려도 없이, 자기 식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자신만 좋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회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함이 아닙니다. 자신만 잘 되면 그만인 것입니다.
이것이 더러운 귀신 들린 자의 모습입니다. 더럽고 악한 생각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잠잠하라”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주장하는 그런 식의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서로 친근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존경하면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11. (2) 둘째는, 반드시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삽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가는 길을 잘 모릅니다. 우리 혼자의 힘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을 배우고, 그것을 실행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한 번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어떤 가르침이 있으신지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어떻게 살고자 하시는지요?
그냥 착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사는 동안에, 우리 주님을 가르침을 따라 살겠다는 각오와 결단이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어떤 가르침이 있는지요?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이 어떤 의미로 채워지기를 바라는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자 하는가요?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자 하는가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욕망을 좇아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12. 요한1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아가페의 사랑을 말합니다. 모성애와 같은 헌신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면 친구 간의 우정적 사랑이라든지, 부부간의 애정적 사랑은 포함되지 않는가요?
아가페의 헌신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 가까운 것이지, 아가페 사랑만이 사랑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서로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진실하고 따뜻한 것이지요. 나를 위한 것보다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지요. 
사람은 결코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중심적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통하여 사랑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를 사랑하고자 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좀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뜻은 우리가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이 이권만을 챙기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사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은 사랑인 것입니다. 

13.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사랑에 관하여 배운 것 하나가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 사랑을 노래한 아가서가 있습니다. 
아가란 이름은 중국 성경을 따라 붙인 것입니다. 그 뜻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가서 6:4절에서 사랑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사랑은 어여쁜 것입니다. 사랑은 고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가서는 사랑을 “당당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당당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어깨를 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신감 넘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인생의 사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지극히 이기적이 세상입니다. 자기만을 주장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새 교훈, 새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것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권위가 없으면 지키고자 하지 않습니다. 권위를 둘 때에 지키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킬 때에 내 삶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교훈으로 날마다 새롭게 사시는 하나님 자녀들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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