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259건, 최근 0 건
   
하나님의 언어: 공존과 공감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6-17 (일) 01:23 조회 : 75
하나님의 언어: 공존(coexistence)과 공감(sympathy) (요나 1:17, 4:8-11)

1. <하나님의 언어> 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해야 할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어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은혜, 믿음, 사랑, 소망, 감사와 같은 말입니다.
요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용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공존과 공감이라는 것을 요나서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공존은 함께 같이 사는 것입니다. 공감은 동정하는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지요.
지난 주간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셨습니까? 잘 되었다고 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종전 선언을 기대하였고, 미국과 북한이 서로 수교를 맺는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악수하고, 밥 먹고 이제부터 잘해보자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전쟁하지 않고, 핵  때문에 걱정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 만족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속 만나서 남한과 북한이 서로 왕래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2. 어떤 분은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은 미국이 북한의 항복을 받아서 남한으로 흡수통일을 하였으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것 때문에 골치 아프게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난 70년간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산 사람들끼리 어떻게 함께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통일하지 않고 이대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지난 평창 올림픽 때에 남한과 북한의 아이스하키 팀을 단일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때에 반대의 글을 SNS에 많이 올렸습니다.  왜 북한과 한팀이 되어야 하느냐며 싫어하였습니다.
우리 팀이 그동안 고생하며 연습해 온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서로 손발을 맞추지도 못한 북한 팀과 단일팀을 만들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3.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요나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라는 말은 <비둘기>라는 말입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평화선언을 할 때에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는 당시 앗수르의 도성이었습니다. 앗수르는 당시에 최고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무서운 두 나라가 있습니다. 북쪽의 앗수르이고 남쪽의 애굽입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소련과 중국과 같은 나라인 셈이지요.
강대국의 횡포 때문인지, 니느웨 성의 죄가 하나님 앞에까지 상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가서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그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못들은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나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 강대국인 니느웨가 미웠습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맛좀 보라는 식으로 피한 것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보살피면 되시지, 할례 받지 아니한 앗수르 같은 나라는 그냥 망하도록 내버려 두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3) 그 땅에 가서 “이 땅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다”하면 돌을 던지든지, 미친 놈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요나는 도망을 친 것일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누가 거역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요나가 탄 배에  큰 풍랑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얼마나 큰 태풍이겠습니까? 지중해의 태풍을 유라굴로라고 합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사공들이 어찌 계절의 태풍을 모르겠습니까? 태풍의 계절이 아닌데, 강한 태풍이 일어나니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의 신들에게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자,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아 알아 맞추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요나가 뽑힌 것입니다. 그러자 뱃사람들이 요나에게 잘못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게 되자, 요나도 자기 때문에 이 큰 풍파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인데, 지금 하나님의 열굴을 피하여 도망가는 신세라고 하였습니다. 
풍랑이 더욱 거세어지자, 사람들이 요나에게, “어떻게 하면 이 바람이 잔잔해지겠느냐?” 고 물었습니다. 요나는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잔잔해질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 살자고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5. 어떻게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바다에 던진단 말인가요? 요나의 말이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실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단지 제비뽑기로 사람을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지나친 것이지요.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똑 같이, 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시겠지만,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요? 짐승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서운 것입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다가 요나를 삼킵니다. 그래서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서 삼일 밤낮을 지내게 됩니다.
사진에 보면, 요나가 배를 탔던 욥바에는 큰물고기 상이 있는데, 물고기가 큰 항아리처럼 생겼습니다. 항아리 같은 물고기 속에서 3일 밤낮을 지내는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세 가지의 깨달음을 가집니다. 
(1)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사람이 바꿀 수 없는 것이고요. (2) 둘째는 세상의 풍랑이 심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항아리 같은 큰물고기로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입니다.
(3) 셋째는 던져지게 되면 던져진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려고 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차라리 던져지면 어떤 새로운 것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6. 이제 물고기가 삼일 만에 요나를 바닷가에 내 뱉습니다. 
그리자 요나는 니느웨성에 가서 억지로 말씀을 선포하게 됩니다. 요나는 여전히 니느웨 성만큼은 망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쉽게 달라지는가요? 고기 뱃 속에 있을 때는 살려만 주시면 순종하겠다고 하였지만, 막상 살게 되니 다시 본심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못마땅하게 말씀을 전하였지만, 신비하게도 니느웨 성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요나의 심기가 심히 불편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데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재앙이 임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말을 그렇게 하였지만, 속으로는 망하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속다르고 겉다른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속성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7. 요나는 끝까지 니느웨 성이 망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니느웨 성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초막을 짓고 살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박넝쿨 하나가 싹이 나고 자라서 그늘이 되었습니다. 요나는 그 일로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그늘 밑에서 성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편을 알아서 이렇게 박넝쿨까지 마련해 주셨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박넝쿨이 자라서 그늘이 되자면 적어도 3개월 정도는 걸립니다. 그러니 요나는 3개월 동안을 저들이 망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이제 가을이 되면서 박넝쿨이 말라 잎이 떨어지고, 다시 태양볕이 내리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넝쿨이 말랐다는 이유로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낫겠나이다.”
한 나라의 백성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요나는 박넝쿨 시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누구나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통일도 좋고 평화도 좋지만 내 삶이 곤고하고 힘이들면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지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뜨거운 것이지요. 

8. 이러한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고 하십니다. 
화를 내보신 분은 알겠지만, 옳고 그름 때문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화를 내는 경우가 많지요.
지금 요나가 그렇습니다. 박넝쿨이야 때가 되면 시드는 법인데,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니느웨가 망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감정을 박넝쿨이 시들었다고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의 요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요-나일 수 있습니다.
(2)  “내가 어찌 저들을 아끼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십니다.
요나가 박넝쿨을 아끼듯이 하나님께서도 니느웨 성 사람들을 아끼신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몰라서 잘못한 것일 수도 있으니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잘못을 알고 회개하였기에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들을 아끼는 것을 왜 네가 못마땅하게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주의 하나님이시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요나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제한시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9. 이러한 요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게 해 줍니다.
(1) 첫째 누군가가 망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랬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온 나라, 온 민족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민족이 서로 협력하며 함께 공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강대국은 강대국으로 필요한 것이고, 한국처럼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로 필요한 것입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어딘가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가 존중히 여기면서 함께 공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요나서는 요나처럼 오직 우리만의 하나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함께 공존하여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성경에서는 아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는 요나도 아끼시고, 박넝쿨도 사용하시고, 심지어 니느웨 성 사람들도 아끼십니다.
요나를 그냥 바다에 빠져 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아리 같은 큰 고기를 준비하여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박넝쿨도 사용하였습니다. 삼개월 밖에 못사는 식물이지만, 그것을 통하여 요나를 달래주셨습니다. 박넝쿨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또 니느웨성 사람들을 아끼시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라고 무작정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끼시는 분이십니다.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공감하십니다. 죄를 지었다고 심판하는 것을 먼저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가정이 있지 않을까 공감을 하시면서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까? 그것은 누가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 줄 때입니다. 어떤 분이  꼰대와 아저씨의 차이점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면 아저씨이고, 무작정 어른 노릇만 하려고 하면 꼰대라는 것입니다. 공감을 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공감을 할 때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10. 제가 유튜브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내가 보아서 기분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중요해도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뒤로 미룹니다.
공감해주는 것이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생의 고통을 공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도 신기하고, 이렇게 세계평화를 위해 김정은을 만나주는 것도 신기합니다. 
처음에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 많이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에게 기대를 합니다. 
그것은 그가 미국인의 바램에 잘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미국 사람부터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American First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거기에 공감을 하는 것이지요. 북한이 핵을 가지고 미국을 불안하게 하니, 전쟁하지 않고 핵을 해결하겠다고 김정은을 만난 것입니다. 공감하는 곳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요나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공존과 공감이라는 말을 주십니다.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삽니다. 이래도저래도 세상은 굴러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입에 담고 살기에 하나님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공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공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살아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총 게시물 259건, 최근 0 건
제목
그의 영혼으로 살기 (마가복음 16:9-11, 요한복음 3:3-7)1. 우리의 영혼 속에는 과거의 경험들이 가득 들어와 있습니다. 내 영혼 속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어려서 “어린 것이…
깨달음에 계신 하나님 (마태복음 13:8-9, 13, 23, 요한복음 14:8-11) 1.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깨달아야 할 것을 말씁하십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깨달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 수 …
권위 있는 새 교훈 (마가복음 1:21-28)1. 오늘 성경말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권위 있는 새 교훈” 이라 말합니다.당시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에서 권위를 느꼈습니다. 가르침에 권위가 있을 때…
천사이야기, 마귀이야기 (열왕기상 19:5-8, 요한복음 13:2, 히브리서 1:14)     1. 성경에 천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막상 교회 안에서는 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창세기 40:3-8) 1. 인생은 그릇과 같습니다. 밥을 담기에 밥그릇이고, 국을 담기에 국그릇입니다. 좋은 것을 담으면 좋은 그릇인 것이고, 나쁜 것을 담으면 그릇까지도 나쁘게 보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편 90:10-15, 베드로전서 1:23-25) 1.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는 말을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지난 주간에 목사관의 서제를 정리하였습…
너희는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라 (고린도후서 1:3-4, 데살로니가전서 4:13-18)1.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긍휼, 거룩, 사랑, 순수등이 있고, 위로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출애굽기 3:13-14, 시편 90:1-5) 1. 1200년대, 이태리의 나폴리 왕국에 <란돌프>라는 백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 아주 똑똑한 5살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의 교육을 받기…
지금도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로마서 11:1-5)1. 구약의 잠언서는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종종 말하기를 “세상 만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말을 합니다.그런데 …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마가복음 4:30-32)1. 기독교인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답은 하나님 나라의 인생입니다. 공중의 새들이 깃들만큼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요즘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어: 공존(coexistence)과 공감(sympathy) (요나 1:17, 4:8-11)1. <하나님의 언어> 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해야 할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어를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은혜, 믿음, 사랑, 소망, 감사…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갈라디아서 4:28-30, 6:6-10)1..어떤 시인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생각을 굶어라. 생각들이란 사자와 들나귀와 같고, 사람의 마음은 그것들이 출몰하는 덤불 숲이다.”생각이 우리를 힘…
믿음의 능력은 인내입니다.(마7:24-27, 눅8:15,약1:2-4)1. 전북 완주에 차사순 할머니라고 계십니다. 옛날분이기에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 (창 3:1-4, 출 20:16, 계 21:8)1.우리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랑비가 비 같아 보이지 않지만 계속 맞다 보면 옷 전체가 젖게 되는 것이지요. 작고 사소한 것이…
에스더의 승리 비결 (에스더 7:1-10)1. 저는 제 인생이 제 뜻대로 이루어진 않은 것에 대하여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을 닫고 산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지금껏 산 것과…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7140 S. Colorado Blvd. Centennial, CO 80122 TEL:720-529-5757
Copyright(c) 2012 Denver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