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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기둥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2-12 (월) 09:25 조회 : 184
하늘 기둥 (누가복음 18:1-8)

1. 누구나 떨어져 본 경험이 있지요. 학교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직장에 서류를 내었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맞선을 보았다가 딱지를 맞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시험에서는  떨어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3번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돌로 떡이 되게 하는 시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시험, 사탄 마귀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 말씀으로 시험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항상 말씀을 붙잡고 살 것입니다.

2. 시험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실망하는 것이지요.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 번 상하면 평생을 가기도 합니다.
낙심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낙심하게 되면 더 이상 일어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낙심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선 저부터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제 자신으로부터 낙심하는 것도 있고, 교단으로 인해 낙심하는 일도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일로 인해 낙심하는 것도 있지요.
제 자신에 대하여 낙심하는 것은 제 자신이 너무 강한 것입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되거든요.  목사가 아니라면 강한 것도 좋지요. 그런데 목사이기에 혹시라도 누군가를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를 하지요. 
교단에 대해 낙심하는 것은 감독과 감리사들이 개체 교회의 어려움을 돌보기보다는 교단의 정책에 따라주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낙심하는 것은 개개인의 입장을 모두 받아주다 보니 동성애도 인정해야 하고, 죄인들의 인권까지 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도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3.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지키면서 살려 합니다.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인연조차 끊고 살려합니다. 안 보면 그만이라는 것이지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닫고, 안 보고 안 만나며 살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게 되면 영혼의 기쁨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정이 점점 식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들어오는 물도 없고 나가는 물도 없이 고여 있는 연못이라면 썩는 법인데, 들어오는 물이 있고 나가는 물이 있음으로 인해 연못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갈릴리 호수가 있고 죽음의 바다 사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려서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4.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심을 막는 것이 항상 기도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가뭄에 시든 식물에 물을 주면 다시 되살아나는 모습처럼 낙심한 후에 기도하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 낙심할 일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니 항상 기도하므로 그 낙심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지요. 
(2) 항상 기도하는 생활이 낙심을 이기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험한 세상에서 시험과 유혹에서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방법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므로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시험에 빠지고 나서 거기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낙심하고 나서 그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낙심하고 나서 기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시험에 빠지고 나서는 거기서 벗어날 기력조차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기도하기가 힘든 것을 어찌합니까?” 하는 것이지요.
이는 마치 평상시 운동을 해서 건강을 지켜야지, 병 들고 나서 후회하고 그 때부터 운동을 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몸이 병이 들었으니 운동하기가 쉽지 않지 않습니까?
기도를 먼저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이면, 실망하는 일이 와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기에 실망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성경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거의가 기도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가리켜 경건한 사람이라 합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godly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으로”라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으로” 사는 사람인 것이지요. 내가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말은 불경건으로 godless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없이”말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기도란 단순히 시간을 내서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시간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세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7. 기도가 어려운 것도 압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는 기도할 줄을 몰라서 못하기도 합니다. 
사람 앞에서도 말 주변이 없는데 하나님 앞에서 말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속이 하얗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과는 말을 하는 게 소통의 수단이지만 하나님과는 말이 소통의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영으로 소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교감이 오고 갑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오래 마주 보지 못합니다. 또 잘못 한 것이 많은 사람은 자꾸 눈길을 피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은 그 눈길을 느끼고 싶어하지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말로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8. 둘째는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만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또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루어진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예로, 어린 아이가 칼을 달라고 하면 어떤 부모가 칼을 주겠습니까? 어떤 자식이 돈을 달라고 한다고 무턱대고 돈을 주겠습니까? 그 돈으로 게으를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어쨌든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면 그저 가만히 예배나 드리면서 살겠다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지요.

9. 셋째는 기도를 하려면 앉으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태껏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기도하려고 하면 생각이 나서 그것 때문에 기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잊어버렸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갑자기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하려고 하면 안 오던 전화까지 옵니다. 사탄이 장난을 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기도 시간이 그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기도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예 생각이 나지 않아서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기도 시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에 잊어버렸던 것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았는데, 기도시간을 가져보니, 자신의 인생이 너무도 분주하기만 하기에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기도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기도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기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세상에 사로잡혀 사게 마련인 것입니다.그렇기에 우리는 더 기도함으로 우리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10. 오늘 말씀에서 기도의 비밀은 “항상” 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낙심할 일이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원한 맺힌 여인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시한다는 말은 하찮은 것은 상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인의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재판관을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판관이 너무도 귀찮아서 그 여인의 한을 풀어준 것입니다.
기도 응답의 비결은 기도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인이 재판장을 감동시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비결은 번거롭게 한 것입니다.
번거롭게 하였다는 것은 (1) 매일 반복하였다는 것입니다. (2) 재판장에게 성가시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3) 여인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심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귀찮게 하라는 말이 아니지요. 하나님께 때를 쓰라는 말이 아니지요. 그 정성이 놀랍다는 것이지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잘 했느냐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인이 자신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한 것입니다. 
여인의 그 한결같은 그 자세에 재판장도 감동을 한 것입니다. 어찌 이렇게 기도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이지요.

11.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그 괴로운 세월을 무엇으로 견딜 수 있었을까요? 
원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원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낙심스러운 형편입니다. 정말 실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낙심하지 않고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 여인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요? 인맥이 좋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하여 재판장에게 부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 돈으로 변호사를 살 형편도 아닙니다.
이 여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매일 찾아가서 자신의 아픔에 대하여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언어로는 오직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을 붙잡아 준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이 여인의 숨통이었습니다. 

12. 오늘 설교 제목이 “하늘 기둥” 입니다.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기둥인 것입니다.
기둥이 필요한 것은 우리들이 모두 낙심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넝쿨들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바닥만을 기는 모습입니다.
칡넝쿨이든 등나무이든 기둥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그늘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터인데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한계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을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위로 올라가는 기둥인 셈이지요.
그러니까  해결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위로 올라가서 주님을 만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기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주님을 만나기에 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기도하리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기도의 줄을 붙잡고 예수님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실망 많은 이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탄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말씀이 가물가물합니다. 성경을 읽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꽉 붙잡을 수 있는 생명 줄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참 좋습니다. 살수록 주님께 갈 수 있는 기력이 약해지지 않습니까? 찬송조차 힘차게 부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찾으러 오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좋은 게 무엇이겠습니까?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주님을 만나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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