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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8-01-31 (수) 03:33 조회 : 139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 1: 8-17)

 

1. 사람이 무섭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이 무서운 것은 그 사람 속에 있는 죄악이 무서운 것이지요. 한번 원한을 품게 되면 사고를 치고 말지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자가 화가 나면 집에다 휘발유 붓고 불을 지르지 않습니까?

근데 사람만큼 또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없습니다. 내가 나를 모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무서운가요? 어리석은가요? 아니면 착한가요?

 

2. 마틴 부버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나와 너>라는 유명한 책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있는 것은 너가 있기 때문이고, 너가 있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서면 너도 나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내가 상대방을 물질적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나를 물건 취급하듯 대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분이 <인생의 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똥은 이리 쓸어도 똥이고, 저리 쓸어도 똥일 뿐이다.

사람은 이렇게 해도 죄인이고 저렇게 해도 죄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너무 자기 자신을 가지고 애쓰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호박에 노란 색깔 칠한다고 참외가 되겠느냐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도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

 

3.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새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보다 더 좋은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또 이 말씀을 반대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일지라도,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고, 그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인생 사는 맛이 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려 해도 상대방이 그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마음이 상합니다. 아무리 사랑을 말하면서 살지만, 사람 때문에 속상해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지 않습니까?

사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 마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이 먼저 순수해야 사랑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음이 편치 못하고, 마음이 복잡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식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내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은 갈등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내 자신이기에, 차라리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한번이라도 더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면서 살아보려고 하면, 또 다시 사랑하기 쉽지 않은 이기적인 내 자신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항상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를 가지고 갈등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성경이 주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4.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예언자입니다.

그는 국가가 심히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니 사람들이 듣기 싫다고 그에게 돌을 던지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눈물과 탄식의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숱한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다시는 바른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욕도 안 먹고 돌에 맞지도 않고 감옥에 갇히는 일도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당시 예레미야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20:9)

그는 진실하였습니다. 정직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의 말씀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직 어리니 하나님의 일에 부적합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5. 또 다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내게 인생을 새롭게 살게 하는 말씀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그 말씀으로 내 인생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묻습니다. 아마도 예레미야가 기도 중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엇을 보느냐는 말씀을 듣고 보니 살구나무 가지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봅니다.”라고 합니다. “살구나무 가지”라는 말과 “말씀을 지킨다”는 말은 서로 소리가 같으면서 뜻이 다른 동음이어(同音異語)입니다.  

예로, 사과라고 하면, 먹는 사과일 수도 있고, 용서를 비는 사과일 수도 있지요.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라고 말을 하니, 하나님께서 바로 고쳐주십니다. 살구나무 가지가 아니라, “내 말을 지켜 그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또 다시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러자 예레미야가 “끊는 가마가 북쪽에서 기울어졌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나라의 재앙이 북쪽에서부터 임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북방이란 강대국인 앗수리아를 말합니다.

강대국이 침략을 하므로 이 나라에 재앙이 임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6.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두려워하라는 것인지요?

예레미야를 처음 부를 때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어린 나이에 심한 말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끊는 가마솥이 북쪽으로부터 기울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땅에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더 두려운 것은 이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백성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 가족에게 그렇게 하면 하나님에게 저주를 받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요.

차마 못할 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두려워할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무엇일까요?

무엇을 보느냐고 2번이나 물으십니다. 하나는 말씀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고, 하나는 끊는 가마솥이 기울었다는 것입니다.

2가지를 연결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이 땅에 북방으로부터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게 절하였은즉 내가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하나님의 뜻은 두려워할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들에게 절하며 사는 그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재앙이 임하는 것은 그 죄를 깨닫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이 나라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웅덩이를 팠는데, 물을 저장하지 못하는 웅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절을 한 우상은 어떤 것일까요?

우상을 좋아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께 마음이 없기에 우상을 좋아하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한 후에도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유가 있겠지요. 남의 나라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했으니 금송아지를 바라보면서 좋은 세월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자기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그 땅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 신을 섬겼습니다. 바알 신은 물질의 신이요 풍요의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가나안 사람처럼 바알 신을 섬기면 땅도 생기고 물질도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게 될 것을 바랬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 자기 땅이 없이 떠돌며 살던 이스라엘이었기에 땅을 차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매추라기로 근근이 배를 채웠는데, 가나안 사람들처럼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 신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섭다는 것이지요.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쫓아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을 버리게 되고, 결국은 그 땅에 재앙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지요.

 

8. 우리로 사랑하며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는 죄악입니다. 이 죄악이 또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은 재앙을 가져오게 하는 이 죄악입니다. 이 죄악이 우리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심판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죄를 두려워하라는 것이지요.

죄를 두려워해야 하는 분명한 2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 죄가 인생을 바르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옳으면서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 인생이 멸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좋아하기보다는 세상을 더 좋아하게 합니다.

은혜는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용서를 받으라는 마음을 주지만, 죄는 죄를 지으면 무서운 마음을 가지게 하여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안 풀리고 망조가 드는 것은 하나님이 복은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죄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인생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예로, 사울 왕은 평생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늘 다윗을 쫓는 생활이었지만, 그는 왕의 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늘 쫓기는 인생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그렇게 불안했던 것은 그 마음에 있는 잘못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다윗처럼 섬겼어도 그렇게 불안하였을까요? 사울 왕에게는 여호와께서 그의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자는 왕의 자리였습니다. 그것만 빼앗기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죄가 싫고 죄가 무서운 줄 알면 죄를 덜 짓게 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9. 둘째로 죄를 무서워해야 이유는 죄를 무서워해야 죄에서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으면, 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요. 그러면 죄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죄가 내 인생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어떻게 하면 죄를 용서 받을까? 죄에서 자유함을 얻을까 하면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좋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를 씻어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지은 죄로 괴로워해야 예수님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죄를 가볍게 여기면 구원의 갈망도 없고,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예수님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좋았던 것은 제가 죄 때문에 너무도 괴로워했기 때문입니다.

 

10. 우리가 죄 무서운 줄 알 때,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될 때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도 지키면서 사는 것입니다.

죄를 무서워한다고 하여 죄를 안 짓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죄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하여 더 많이 사랑하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바르게 사는 것임에도 그렇게 살게 하지 못하는 것이 죄인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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