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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서 꼭 한 가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12-18 (월) 05:06 조회 : 131
예수님에게서 꼭 한 가지 (누가복음 2:4-7, 빌립보서 2:5-8)

1. 성탄절하면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기억들이 있으신지요? 
아마도 새벽송 기억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기억에 나는 것이 무엇인지요? 예수님하면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요? 
예수님에게서 꼭 한 가지를 말한다면 무엇을 말하실런지요?
오늘은 예수님에게서 꼭 배울 것 한 가지를 말씀하고자 합니다. 

2. 저는 저 지난 주간에 두 번에 걸쳐 설사를 하였습니다. 이틀 저녁은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설사를 하였습니다. 몸무게가 8파운드가 빠졌습니다. 
몸이 약해졌습니다. 거기에 몸살감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당뇨 관리하면서 근육도 키워 놓았는데, 설사 며칠 하고선 모든 근육이 빠졌습니다. 
온 몸에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운만이 아니라 어떤 의욕도 없었습니다.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몸이 힘이 드니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내가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해도 먹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채우고 사는 것도 좋지만, 비우고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비울 줄 알아서 세상의 욕망이 꺾인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마음을 비웠다”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이 없다는 말이지요. 모든 것을 비우고 났더니 더 이상 근심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비우고 사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비우는 것이 주는 놀라운 효과를 알게 됩니다.

3.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꼭 한 가지 배울 점으로 비우는 것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무거운 것은 너무 채우고자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 로마서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가리켜 열린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열린 무덤이란 열려 있어서 항상 채우려고만 한다는 말입니다. 무덤이란 그게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깨진 항아리와 같다”는 말을 합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을 말합니다. 
(2)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좀 쉬는 인생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내려놓고 사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쉬게 하리라”는 말씀은 욕망을 쫓아 살지 않고, 욕망을 비우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4. 빌립보서 2장 5-8절의 말씀에서 아주 잘 정리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신경이 있기 전의 초대교회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최초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고백한 말씀인 것이지요.
그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이것 한 가지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를 떠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자기를 비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맨 처음에 예수님을 고백한 사람들은 예수님을“자기를 비우신 분”이라 하였습니다.
“비웠다”는 말은 <케노시스>라는 말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해주는 용어입니다.

5. 비웠다는 것은 씨앗이 땅 속에 묻혀서 속이 썩음으로 껍질을 뚫고 싹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싹을 틔우기 위해서 자신이 썩어짐으로 속이 텅빈 상태를 말합니다.
텅빈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지요.
33살의 젊은 예수께서 도망도 가지 않고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갈 수 있었을까요?
유대인들과 타협을 하고 죽지 않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마다하고 죽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송두리째 비웠기 때문입니다.
그 비운 자리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9절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하였습니다.

6. 예수님의 이야기에는 비어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빈 자리에 하나님께서 부활을 채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지 않고 시신이 있었다면 부활은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여관의 모든 방이 꽉 찼습니다. 빈 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빈 외양간에 태어나시고 빈 먹이통에 누우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빈자리가 없어서 예수님은 여관에 태어나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빈자리에 오시는 분이십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저 바벨론이라는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1,440KM, 800마일의 거리입니다.
그 멀리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찾아온 그들의 이름 정도는 성경에 기록한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잠자리조차 변변치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7.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을 다른 말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라고 하지요.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자신을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이 자신을 비우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고선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판 것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 나 살자고 주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고서는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비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8. 비운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떤 말이 적합할까요? 어느 때에 우리에게 비우는 것이 필요할까요? 마음을 비우지 않고는 안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요?
비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두 가지 내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약성경에서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고자 창을 던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골리앗을 죽인 자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심할 때는 악령이 든 것 같았습니다. 그 때는 다윗을 죽이려고 그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번도 그 창을 되받아 던지지 않았습니다.
(2) 진 에드워드 목사님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이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나를 향하여 공격을 하거나 비난을 할 때에 그것을 되받아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음을 비운 자의 모습입니다.
내 속에 미움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것을 비우고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창을 던지지 않은 것은 사울도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만 옳고 사울은 틀린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울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울을 공격하는 것은 자칫하면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그 마음에 나의 감정과 욕망과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9. 저는 최근에 "End of the Spear"(창 끝)이라는 선교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마존 밀림지역의 에콰도르 원주민을 선교하였던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짐 엘리엇, 라저 유더리언, 에디 멕컬리, 핏 플레밍, 그리고 네이트 5명의 선교사가 밀림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날 한 시에 원주민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 때에 선교사들에게는 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자기들을 향하여 창을 던지는 원주민들에게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5명의 선교사들이 죽게 되자, 이번에는 그의 부인들이 그 곳을 찾아갔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후에, 오랜 세월이 지나 선교사의 부인들은 미국으로 철수하였습니다. 한 선교사 부인이 암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를 너무도 존경하였기에 장례식에까지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유언을 따라 시신을 선교지에 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 원주민과 함께 선교지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한 곳에서 땅을 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기 아버지가 처음 선교 들어왔을 때에 타고 들어왔던 작은 비행기 날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에게 이곳이 나의 아버지께서 죽으신 곳이냐고 묻습니다.
그 때에 원주민이 그곳에서 창을 하나 발견하고는 이 창이 바로 내가 너의 아버지를 죽인 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창을 선교사 아들에게 주면서 자신을 향해 던지라고 합니다.
이 창 끝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아들이 선교사에게 묻습니다. 그 때에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어떠 했느냐고요. 그대가 우리 아버지에게서 본 것이 무엇이냐고요.
원주민은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는 우리가 창을 던질 때에 총이 있었으면서 그 총을 우리를 향해 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자신들은 누가 나에게 창을 던지면 나도 따라 창을 던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았는데, 그 때 창을 던지는 자기들에게 총을 쏘지 않는 선교사들을 보면서, 나중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침 뱉음을 당하셨지만 대신 침을 뱉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욕을 당하셨지만 대신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에 맞으셨지만 그러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고 하는 것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들에게 되받아 창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10. 선교란 저 멀리 가서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내 이웃에게 창끝을 겨누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욕을 하였다고 하여 대들어 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살고자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비운다고 하는 것은 내가 욕하고 싶은 그 마음에 예수님께서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욕망이 꿈틀거리는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일까요?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할 꼭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욕망과 내 감정과 내 주장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창 끝을 겨누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부름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12.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한 번도 선행을 행하지 않은 한 사악한 노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자신이 빼앗을 수 있으면 불법적으로 빼앗았고, 자신이 가질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려 하였습니다.
그녀는 누구에겐가 무엇을 준 적이 없었고, 훌륭한 일을 한 적이 없었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죽자 악마들이 그녀를 불의 호수에 던졌습니다.
그 때에 그의 수호천사가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가 그녀가 채소 밭에서 양파 한 뿌리를 뽑아서 구걸하는 여인에게 던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러면 그 양파를 가져다가 불의 호수에 던져 그녀에게 주어라. 그런 다음에 그녀가 그 양파를 붙잡고 올라오게 하라. 그 양파로 그녀를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를 낙원으로 맞아들이겠다.”
수호천사가 그에게 양파를 건네주었습니다.“이것을 꼭 붙잡으세요. 내가 그대를 끌어 올리겠소” 천사는 조심스럽게 양파를 붙잡은 그를 당겼습니다.
때 마침 호수 안에는 숱한 죄인들이 그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를 붙잡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히 악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매달리는 자들을 발로 차기 시작하였습니다.
“올라갈 사람은 너희가 아니고 바로 나야. 이 양파는 너희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한 것이야”하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자 양파는 부서지기 시작을 했고, 결국은 여자는 다시 불의 호수에 빠졌습니다.

13. 상대방을 향하여 창끝을 겨누지 않고, 사랑의 화살이 되는 것이 바로 마음을 비운 자의 모습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신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
여러분, 올 성탄절에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십니까?
예수님에게서 꼭 한 가지 배울 점은 자기를 비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그를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온 세상의 주님이 되게 하였습니다.
올 성탄절에는 마음을 비우고 그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는 절기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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