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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은혜의 사람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10-19 (목) 07:41 조회 : 138
기독교인, 은혜의 사람들 (로마서 3:21-27)

1. 사람의 생각이 젊었을 때와 나이가 들었을 때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힘도 있고 능력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합니다. 기도만 하지 말고 사람이 할 것은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장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러서는 해 봐도 안 되더라고 말을 합니다. 힘을 써서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것이 더 많았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젊어서는 자신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어느 말이 옳을까요?
젊은이들은 “어른들이 안 된다고만 말을 한다”고 불평할 것입니다. 어른들은 “젊은 것들이 경험이 없어서 하는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2. 어느 것이 옳으냐의 문제로 역사를 시끄럽게 하였던 것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작가 김훈이 쓴 <남한산성>이라는 책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이번 주간에 덴버에서도 상영을 합니다. 이 영화는 청나라의 침략 앞에 척화파와 주화파, 김상헌과 최명길, 두 사람의 논쟁에 관한 영화입니다. 

조선 1636년 겨울, 인조 왕 때에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여진족의 후예인 청나라가 명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조선에 자신들을 아버지 나라로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자 전쟁을 걸어온 것입니다.
왕자와 빈궁들이 이미 피난 간 강화도로 피난을 가고자 했는데, 이미 청나라가 그 길을 차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왕과 신하들은 남한산성에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에 외교부장관에 해당되는 예조판서 김상헌은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가 도왔으니, 명나라가 또 도와줄 것이라면서 청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로 섬길 수 없다 하였습니다.
반면에 행정자치부 장관에 해당되는 이조판서 최명길은 일단 청나라와 화친을 하고 나중을 도모하자면서 주화를 주장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3. 소설의 처음 이야기는 김상헌이 송파나루를 건너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김상헌이 뱃사공에게 “전쟁이 났는데 어찌 피난을 가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뱃사공은 그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청나라 병사가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을 얻어 처자식 배고픔을 달래주려 합니다.”
나라에 대한 걱정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은 없고, 개인의 배고픔만을 생각하는 한 백성의 이야기는 당시의 형편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뱃사공의 이야기는 당신의 백성의 형편을 대변해주는 것입니다. 
그 때로부터 40년 전에 임진왜란이 있었습니다. 임금 선조는 백성이야 어찌되든 간에 왕만 살겠다고 백성을 버리고 신의주를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나라에 전쟁이 났어도 나라 걱정보다 자신들 생각만 하겠습니까?

김상헌은 강나루를 건넌 후에 뱃사공에게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자고 합니다. 거절을 하자 뱃사공을 죽입니다. 이유는 뱃사공이 나라 걱정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청나라 군사들로 강나루 건너는 것을 돕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뱃사공을 죽인 것이 잘한 일인가요? 만일 뱃사공이 우리 자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

4. 병자호란은 12월에 시작하였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풀리면서 전쟁은 치열하게 되었습니다. 왕을 구하겠다고 조선의 많은 군사들이 동원되었지만 전쟁에서 패할 뿐이었습니다.

김상헌은 죽음은 견딜 수 있어도 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견딜 수 없다면서 계속 화친을 배척합니다.
최명길은 왕도 죽고 백성도 죽는 죽음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치욕을 참고 견디어 나중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면서 화친을 주장합니다.

봄이 찾아오면서 강화도가 청나라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듣게 됩니다. 청나라의 황제가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러자 왕은 청나라에 항복을 합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몸을 조아리는 예식입니다.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하지요. 

5.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일까요? 쉽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의 입장과 견해에 따라 서로 다를 뿐입니다.
국가의 자존심을 살리자고 전쟁을 하여 백성과 군사들이 숱하게 죽는다면, 그 국가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일까요?
또 백성과 군사들을 살리자고 왕이 나가서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한다면, 왕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한국이 그렇습니다. 중국과 가까이하자는 자들이 있고, 지금껏 동맹을 맺어온 미국을 버릴 수 없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을 만들었으니 우리도 핵을 만들어 대적하자는 자들이 있고, 그렇게 핵을 만들면 서로 망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 사는 세상에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저렇게 하면 이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요? 

6. 작가 은희경 씨가 아주 공감이 가는 글을 썼습니다.
“어떤 게으른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은 게으르다 보니 매사에 의욕도 없을 거라는 식으로 말하기 쉬운데, 어떤 사람을 그런 식으로 규정하는 자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인격을 훼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렇게 함부로 속단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는, 어떤 존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쓰려고 합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누구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옳고 그는 틀리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7. 김상헌처럼, 죽더라고 지킬 것을 지키고, 하지 말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최명길처럼, 죽으면서까지 나라를 지킨들 지킬 수가 있느냐? 죽으면 무조건 그들의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방원처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칡넝쿨처럼 이리 저리 얽혀 사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또 정몽주처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더라도 임을 향한 마음 변치 않으리라고 말을 합니다.
어느 편에 설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을 의롭다고 하실까요?

8.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서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21절에,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 외에”란 말이 참 중요합니다. 즉 법으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법을 기준의 잣대로 삼았는데, 법이 그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조선의 임금이 곧 법인데, 인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외에 다른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준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옳다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고, 저 사람이 옳다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고,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자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죄가 더 많다고 한다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중에서 틀린 것이 더 많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9. 그렇기에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 고 합니다.
“속량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은 속량이라는 방편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속량이 아니고는 인간을 구제할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속량은 죄 값을 갚아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은, 쌓고 쌓은 죄의 짐을 벗어버리게 한다는 말입니다. 

50년을 살면 50년 동안 죄를 지었습니다. 70년을 살면, 70년 동안, 90년을 살면 90년 동안 죄를 지었습니다. 그 양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많은 양을 모두 갚아주는 것입니다. 외상값이라고 한다면, 70년 동안 못 갚은 외상값을 모두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으로 대속을 한 것입니다. 내가 갚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값없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구원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10. 모든 사람에게는 두 명의 자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적 낙관주의로 사는 자식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잘 판단하여 실패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성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직 더 나아지려고 합니다. 오직 남보다 더 앞서 가려고 합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하나의 자식은 감정적 비관주의자입니다.
항상 자신의 감정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을 합니다. 누가 조금이라도 기분을 나쁘게 하면 금새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들고 어렵게 되면, 왜 자신만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냐고 불평을 합니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서 항상 비관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성적 낙관주의자로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교만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은 실패를 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고 자기 생명을 자신이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힘 없는 자의 논리라고 하면서 무시합니다.

우리는 감성적 비관주의자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곤고한 인생을 느끼기에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이 잘못한 것 같기에 더 많이 회개합니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 조금이라도 은혜를 베풀어 주면, 그것이 고마워 평생토록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삽니다.

11. 저는 무엇이든 잘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성적 낙관주의자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못나게 여겼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감정적 비관주의자가 아니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자입니다.
남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내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당뇨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이야기를 말씀 드리는 것은 인생은 누구나 마찬가지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직도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먼지가 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앞과 같은 밝은 빛 앞에서는 숨은 먼지까지 다 보이지 않겠습니까?

인생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복음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여 사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인 것입니다.

12. 남한산성 영화를 보시게 되면 김상헌이 옳다 최명길이 옳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는 전쟁을 해서라도 우리가 이기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이긴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전쟁이 나서 내 주변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전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을 합니다. 잘생긴 나무들은 일찌감치 건축자재로 잘려나가는 것이지요. 그것을 볼 때마다 그것이 부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잘려나가면 산에는 나무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산에 나무가 있는 것은 못생긴 나무가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옳다고 하지 말 것입니다. 나도 같은 죄인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인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내가 죄가 더 많다는 것은 아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는 참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들을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나같은 자를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시는 우리 모두이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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