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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예수의 사람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10-02 (월) 00:41 조회 : 125
기독교인, 예수의 사람들 (마태복음 5:1-4, 에베소서 4:22-24)

1.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는 곳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사람의 마음을 어찌 그리도 몰라 주냐”라고 합니다.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면서 마음을 모르고 살면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서로 벽처럼 느끼는 것이지요. 남보다 못하다고 하지요. 
그렇기에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새 사람을 입으라.”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하였습니다.

2.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항상 시대를 열어 가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늘 새롭게 살고자 해야 합니다.
자동차도 디자인을 새롭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항상 새롭게 단장하는 것은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옛날 것만 고집하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성경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유대교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유대교의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것을 제일로 여겼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방인이라 하여 그들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 신앙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것을 새롭게 시도하였습니다. 

몇 가지 예를 말씀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구약에서 부르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왜 구약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일까요?

또 하나는 유대교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안식일 법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하였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고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시편 1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유대교의 복은 여호와의 율법을 좋아하여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하고 율법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항상 율법의 말씀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처음으로 복을 말씀하시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의하여 새롭게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을 중심으로 시작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독교인 하면, 기독교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은 기독교인입니다. 천주교인도 기독교인이고 개신교인도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500년 전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 의하여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나왔습니다. 개신교가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성경과 다른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는 교황은 전혀 흠이 없는 자이고, 교황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성경에 없는 교황의 말이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믿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또 하나는 면죄부를 판매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천주교는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모금을 하였습니다. 더 많은 모금을 위해 베드로 성당을 위한 헌금은 죽은 자들의 죄까지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테첼이라는 수도사는 이렇게 설교를 하였습니다.
“단순히 면죄부를 산 사람만의 죄가 아니라 그의 부모 친지의 영혼조차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딸랑거리며 떨어지는 순간에 연옥으로부터 빠져 나온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저항하여 수도사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정문에 95개의 항목을 제시하면서 교회가 새로워져야 할 것을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습니다.

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참된 것을 통하여 잘못된 것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항상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새롭게 할 것이 없을까요? 우선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 살고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종교개혁의 중심은 예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화려한 교회도 좋고, 많은 교인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6. 2017년 10월은 종교개혁의 달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달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다짐하는 달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놓치면 흘러가는 세월 앞에 붙잡을 것이 없습니다.

종교개혁의 달을 맞아 예수님으로부터 3가지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진실한 마음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불렀을까요?
당시 모든 유대교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거창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친숙하지는 않았습니다.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부르기는 하였지만, 마음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은 충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자신들이 사는 것과는 서로 달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거창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바깥에서는 서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신고하고 고소하는 각박한 삶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고소할까 했는지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형식적인 신앙을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친숙하고 진실하게 믿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이 참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7.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과 친숙하였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였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진정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아버지처럼 공경하면서 그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내 자신이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마음의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마음에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나만의 관계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하나님과의 친숙한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든든한 것입니다.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인 것입니다. 

8. 둘째로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안식일 법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안식일이 있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인데,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느냐고 안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통해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변하여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맛 잃은 소금과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많습니다. 교인도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이 새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떠한지요? 교인들이 얼마나 변하여 새사람으로 사는지요?
시장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인가보다”라고 한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9. 셋째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복의 개념을 바꾸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복을 받으려 하지 않고 계속 다른 복을 받으려 한다면, 예수님과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복은 천국과 관련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복은 천국의 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복을 갈망할 때에 나의 삶에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항상 허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미연합감리교회 임원 임명식에서 임원이 된다는 것은 위로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죽음 앞에 선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로운 이민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난 앞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암과 같은 병 앞에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생들 앞에 진정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은 서로를 위로해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10. 내 인생이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임을 알고 다른 사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위로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위로 받을 길이 없기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먼저 위로를 받고 남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에게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나도 위로 받고 다른 사람도 위로하면서 사는데, 내 자신에게 하나님이 너무도 가난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11. 또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애통하는 자란 인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잘못을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여기면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남을 위로하기도 하고,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10월 한 달은 2가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버지라 부르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실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마음 든든하게 살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하셨고, 마틴 루터도 새롭고자 한 것처럼, 나도 새롭게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예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사람으로 살겠다면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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