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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인 것이 있습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9-28 (목) 00:25 조회 : 197

먼저인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31-33)


[1]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지혜롭지 못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때에 다급한 것을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지 않느냐고 말을 합니다.

한두 번 그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것은 항상 급한 것에 밀리게 마련입니다. 쉽게 말해서 먹고 사는 일에 여념이 없다보니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한번도 하지 못하고 인생 다 끝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저축해서 나중에 유럽 구경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후배 목사는 일단 카드로 유럽 구경을 하고 살면서 그 빚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겠다는 것도 나중에 건강이 뒤따라야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만 정말 하고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하는 것입니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2] 살아봐야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좋은 것이 계속 인생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빴던 것이 인생을 계속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분명히 좋았던 일들이 더 많습니다. 좋았던 순간들은 쉽게 잊혀집니다. 그런데 나빴던 기억들은 마음에 못을 박듯이 하여 오래갑니다.

어린이 놀이터에 시이소오가 있습니다. 이쪽이 올라가면 저쪽이 내려가고 저쪽이 올라가면 이쪽이 내려가는 놀이 기구입니다. 인생살이가 시이소오 놀이와 같습니다. 내려 갈 때가 있습니다.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 때입니다. 몸이 고달프고 아플 때가 있습니다. 병으로 인하여, 자식으로 인하여, 늙어가는 인생으로 인하여, 돈 문제로 인하여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올라가고 싶어도 올라가 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올라가는 방법을 찾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이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삽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참기도 하고 견디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의 날갯짓을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독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복을 주실 것을 믿으면서 희망을 품습니다.   

[3] 내려가지만도 않고 올라가지만도 않고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것이 인생이지요.   

그런데 실망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있으면 항상 올라갈 줄로 알았는데, 하나님을 붙잡고 있어도 내려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세파에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계속 흔듭니다. 떨어질 때까지 흔듭니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고 자주 실망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현실적인 것이기에 내팽개칠 수도 없습니다. 모른채 할 수도 없습니다. 온전히 우리 몫이기에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소망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현실이 어려우면 생활 전체가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좋고,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하면 좋은 것들이 오히려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차라리 마음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짓을 해서라도 먹고 사는 것이 편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현실은 죽을 때까지 반복이 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저것이 문제이고, 또 저것이  해결되면 그 다음의 문제가 생깁니다. 자식 다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나면 편히 쉴 것 같았는데, 손주 자식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니 쉴 날이 없습니다. 

우리가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고  노래는 하지만, 실상은 나이 팔십에 쓸만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4] 누구나 인생살이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응아하면서 태어나서 한 숨 내쉬면서 떠나는 것이지 않습니까? 맨 몸뚱이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최희준의 하숙생을 아는 세대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아무리 인생은 축복이라고 목에 힘을 주어 말을 해도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공허함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는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존재이기에 우리를 건져주시는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현실이 1번이고, 하나님 믿는 것이 2번이라면,  우리가 1번에 빠져 허우적저리고 있기에 주님께서 2번으로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2번을 붙잡았다고 하여 1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하고 우리의 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봐서 아는 일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 고통이 없어지는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 죽을 인생이 죽지 않는가요?

[5]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 인생이 항상 1번이기에, 2번을 붙잡고 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연약한 내 인생을 이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그 사랑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어미가 병아리를 날개 아래 보호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시는 것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2번이 있음으로 1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어쩔 수 없는 1번이기에 2번으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1번으로 살다가 1번으로 죽겠다고 하는 것이 그냥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1번이  소망이 없기에 2번을 붙잡고 사는 것이 구원 받아 사는 것입니다.

1번으로 사는 내 인생이 불쌍해서 2번으로 살겠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믿음생활에 정진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살이가 날마다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날마다 1번의 연속이기 때문에, 1번을 이길 수 있는 길로, 2번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2번을 붙잡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다보니 마음이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고, 건강도 얻어 1번을 감사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2번이 없다면, 1번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것은 기계를 쉬지 않고 밤낮없이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계가 고장 나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6]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현실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1번에만 사로 잡혀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일에만 전념하여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번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먼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만이 제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두 개가 다 중요한 데, 그렇지만 먼저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을 하게 되면 두개 다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할 것을 하지 않으면 이것도 얻지 못하고 저것도 얻지 못하고 둘 다 놓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먹고 사는 일에 전념하다 보면, 먹고 사는 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만족할 수 없기에 둘 다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일에 우선하다 보면 그것이 마음에 힘이 되고, 마음이 강하게 되면 몸도 건강해져서 또 다시 세상을 새롭게 살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요한 장로는 요한2서 2절에서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말은 영혼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기쁨으로  행하기에 그를 사람들이 좋아하기에 범사의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7]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몸도 강건해지는 것을 형통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말이 가장 많이 쓰인 사람은 창세기의 요셉입니다.

그런데 이 요셉에게 형통하다는 말이 쓰인 것은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 뒤가      아닙니다. 그가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할 때가 아닙니다.

요셉이 형통하였다는 말이 쓰인 곳을 보니, 처음 사용된 것이,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사 자기 집의 종으로 데려갔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의 사람의 집에 있으니”

이 말씀을 잘 분석해보면, 요셉이 형통하게 된 것이 종으로 팔려와 보디발의 집에 있게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두 번 째로 형통하게 되었다는 말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므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입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이 형통하게 되었다는 것이 둘 다 그가 큰 어려움에 있을 때였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 닥쳤을 때에, 하나님을 놓지 않고 마음을 하나님께 두었더니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좋을 때에 좋은 일이 겹치는 것을 가리켜 형통하였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시기하여 호사다마라고 합니다. 좋은 일에는 항상 불행한 일이 닥친다는 뜻입니다.

형통하였다는 말은 어려운 일이 닥쳤지만 그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이기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현실이 1번의 현실이지만 2번을 붙잡고 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하나님 의지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기에 형통한   인생인 것입니다.

[8] 반드시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냥 살면 안됩니다. 

그것이 먼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내 자신을 위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뒤로 여기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을 소홀히 여기면 안됩니다. “오늘 못 드리면 다음에 드리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뒷전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번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내 인생의 사다리에서 다리 하나가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더 든든하게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이것저것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면 나는 오늘 공치는 시간을 보냈다고 여기면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으로 손해보는 일이 많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믿음생활을 해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먼저 해야 할 일들을 놓치고 살기 때문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을 하게 될 때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경에 예수님께서 “먼저”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예물을 드리라”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먼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는 숨기고 남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가을에 내가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의 것을 먼저 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것을 먼저하시기를 바랍니다.

생선을 달라하는 자식에게 뱀을 주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자에게 어찌 하나님의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보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여러분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가을에 하나님의 열매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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